그런데 입을 것도 없어
세상엔 수많은 미스터리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옷장이다. 옷장은 늘 자리가 없다. 기숙사의 작은 옷장에서 시작해 투룸에서 썼던 이단 행거, 오피스텔의 붙박이, 지금의 드레스룸까지. 예나 지금이나 공간에 비해 옷이 많다.
처음으로 온전한 나만의 옷장을 가져본 건 십 년 전, 스무 살이었다. 박스 몇 개를 들고 어리바리하게 기숙사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룸메이트 언니가 참 다정하게 말 걸어준 기억이 있다. 그날 텅 빈 옷장에 몇 안 되는 옷가지를 집어넣으면서, 입을 게 없다는 것과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됐단 사실을 실감했다. (물론 그러고 얼마 안 있어 대학로를 누비며 쇼핑을 했고 옷장은 금세 가득 차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옷장의 크기는 점점 더 커졌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다 큰 성인에게는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여러 개'보다 '몸통은 하나인데 셔츠는 20개'가 더 와닿는 말일 것 같다. 그래도 셔츠는 그나마 얇기 때문에 괜찮지만 부피가 큰 옷은 사기 전에 고민이 된다. 마음에 든 후드를 찾아서 열심히 상세페이지 스크롤을 내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들어갈까..?'
특히 마음에 안 드는 건 롱 패딩. 겨울 필수템이라 쳐도 너무 크고 뚱뚱하다. 티셔츠 열 장이 들어갈 자리를 혼자 차지하다니 너무 욕심쟁이 아닌가?
옷 탓만 하기엔 미안하니 이번엔 가구 탓도 해본다. 비어 있을 땐 꽤 많이 들어갈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눈속임일 뿐. 실제로는 서랍 한 칸에 니트 5개만 넣어도 꽉 차서 왠지 모르게 억울해진다. 이쯤 되면 가구 세계에 어떤 음모가 있는 게 아닌가란 주장을 재기해본다.
결국 각기 다른 옷장 안에 욕망을 꽉꽉 채우며 살아온 것 같다. 사도 사도 입을 건 없었다. 싼 옷을 여러 벌 사도 비싼 옷을 큰맘 먹고 사도 그랬다. 영원할 것 같았던 만족감이 한 달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지곤 했다. 채워지지 않는 무엇에 그리 갈증을 느끼며 충동구매를 일삼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갖고 싶던 옷으로 옷장을 채워나갔던 순간순간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내게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