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1

2개월~12개월 딜레마

by 덤보아빠

인도네시아는 많은 면에서 열악하지만, 그 열악함이 오히려 이득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사업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득이 되는 그것은 바로 인건비이다. 매년 6% 이상 인건비가 상승하지만 아직도 자카르타 최저임금은 월 45만 원 선이다. 그나마도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될뿐더러 열악한 취업시장을 악용하는 많은 고용주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인도네시아는 지역별 최저임금이 다른데 지방의 경우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많은 공장이 이전을 하는 원인이다.


낮은 인건비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우리 같은 외노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에나 볼 수 있던 숙식 가사도우미 혹은 유모를 인도네시아에서는 누구나 싼 비용으로 쓸 수 있다. 가사도우미는 약 20만 원, 유모는 약 35만 원이면 쓸 수 있는 것이다.


출산 전 아내는 가사도우미를 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무료한 인도네시아 생활 중에 집안일마저 남에게 맡겨버린다면 정말로 우울증이 올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출산을 앞두고 우리는 가사도우미를 들였다. 처음에는 유모까지 들이지는 않았다. 출산을 한 직후에 막 일을 그만둔 처제와 장모님이 한국을 떠나 우리 집으로 왔었기 때문이다. 처제는 한 달, 장모님께서는 두 달 조금 넘게 아내를 돌봐주다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장모님께서 귀국하시기 전에 우리는 유모를 구하기로 했다.




인력사무소에 연락하니 간단한 이력과 함께 사진을 보내줬다. 이력은 속이는 경우가 워낙 많아 참조만 했고 오히려 더 검증된 과학, 관상을 토대로 판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까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역시나 관상은 과학이었다. 우리 집에 온 이까를 처음 본 순간 이 친구는 유모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푸근한 인상에 통통하지만 다부진 몸매는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서도 지치지 않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까는 굉장히 좋은 유모였다. 일머리가 좋아 한 번 알려준 일은 거의 잊는 법이 없었다. 굉장히 건강하고 체력도 좋았는데 온 집에 퍼졌던 역병(감기)에 이까도 걸렸지만 하루 만에 완쾌하기도 했다. 매일 밤늦게까지 폰을 보면서 노는데도 항상 새벽 네 시 반이면 먼저 일어나서 아기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덤보도 이까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히려 엄마보다도 더 좋아했는데 푸짐한 이까에게 안기는 게 마른 엄마에게 안기는 것보다 편했던 것 같다. 또 어찌나 나긋나긋하고 이쁜 목소리로 덤보를 대하는지 아내와 장모님이 저건 어떻게 하는 건지 너무나도 궁금해했었다.





유모를 쓰면 삶의 질이 확 높아진다. 개인 시간이 생기면서 아내는 출산으로 망가진 몸을 드디어 다시 돌보기 시작했다. 임신 전 굉장히 운동을 열심히 하던 아내는 임신 후 안정기를 계기로 운동을 접어버렸다. 모든 근육이 다 사라져 출산으로 인한 관절통이 점점 심해진 데다 면역력도 떨어져 두 달에 한 번 꼴로 감기를 아내는 더 이상 운동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유모도 생겼겠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유모를 쓰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엄마를 알아볼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사람을 주양육자로서 더 따른다. 덤보도 그랬다. 엄마보다는 유모에게 더 애착을 보였는데 유모를 주양육자로서 인식한 것 같았다. 이때 와이프가 마음의 상처를 엄청 받았다. 보는 나도 맘이 아팠는데 엄마인 아내는 얼마나 더 아팠을까 싶다. 유모를 많이 쓰는 미국 엄마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전문가들은 뭐라고 하는지 수도 없이 검색해 봤다. 모든 글에서 아이가 유모에게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아기가 애착을 보일 정도로 좋은 유모를 구한 것이니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했다. 애착의 대상이 없는 것이 문제지 그게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엄마를 찾으니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부모인데 자식이 남을 더 좋아라 하는 모습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유모를 잘못 쓴 부분이 크다. 우리는 먹이거나 씻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당연히 생존의 입장에서 필수적인 행위이지만 아기에게는 다르다. 아기에게는 놀이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당시 우리는 나름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일을 했고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시간에는 유모에게 맡겨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덤보의 시선에서 자기랑 놀아주는 것은 유모였던 것이다. 유모는 즐거운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문제를 몰랐고 아내의 몸은 계속 아파 답답한 마음을 안은 채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유모를 썼다.




오묘한 찝찝함을 맘속에 품은 채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 르바란 시즌이 찾아왔다. 이까는 르바란을 기점으로 우리 집을 떠났다. 점점 커가는 자기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가지 말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예정된 헤어짐이었지만 참 아쉬웠다. 이만한 유모를 또 어디서 구할까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유모를 구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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