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부터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서는 르바란 전에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르바란 이후부터 일할 유모를 구했다. 이까는 르바란 휴무 이후에 다시 잠깐 돌아와 새 유모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갔다. 그런데 기껏 인수인계까지 했던 이 유모는 정말 별로였다.
너무 무표정한 데다 목소리도 낮고 칙칙했다. 덤보랑 놀 때조차도 너무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말하다 보니 보는 우리의 흥조차 떨어질 정도였다. 그나마도 낮은 목소리로 대충 말하고는 창밖이나 내다보며 멍하니 있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유모에게 애를 많이 맡기던 시기라 9시에서 10시 사이에 한 시간 쉬는 시간을 줬었다. 그런데 새로 온 이 친구는 8시 정도가 되자 본인 좀 쉬고 와야겠다며 아내에게 애를 맡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악인 것은 깨끗이 씻질 않는지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항상 어둡고 냄새나던 그녀가 딱 한 번 함박 미소를 지었었는데 우리가 덤보를 데리고 외출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였다.
이 이상한 유모를 뽑은 것은 르바란이라는 시기적 요인과 우리의 큰 실수가 겹쳐져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우리가 충분한 과학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르바란 직후라 유모 후보가 많지 않아 이력만 보고 뽑았더니 이런 대참사가 난 것이다. 이력은 구라가 많다. 다행히 인도네시아 인력사무소는 소개비를 받는 대신 소개비 크기에 따라 무상 교체 몇 번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인력사무소에 연락해 교환 서비스를 요청했고 이번에는 검증된 과학, 관상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역시나 관상은 과학이다. 이번에는 이나라는 이름의 유모였는데 놀랍게도 이나는 우리 회사에 출근하는 대학을 나온 친구들보다 머리가 좋았다. 아기도 나름 잘 봐서 덤보도 이나를 엄청나게 좋아라 했다. 다행히 덤보는 어린 탓인지 유모가 바뀌는 것에 대한 반응이 별로 없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유모랑 재미있게 놀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잘 못 느꼈지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나가 우리 집에 적응을 한 이후에도 우리의 걱정거리인 애착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모가 바뀌는데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덤보의 애착이 이까에게서 이나에게 이양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때도 아내는 수시로 아프던 시기라 편함과 마상의 해결 두 가지 의제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아내는 결국 엄마로서의 결단을 내렸고 결국 식모를 내보냈다. 대신 이나를 오전에는 청소를 하게 하고, 오후에는 두 시간만 덤보를 보게 했다. 유모가 봐주는 두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아내가 아이와 함께하기로 했다. 대신 내가 퇴근하는 저녁시간에는 내가 덤보와 놀아주었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덤보가 점점 똑똑해지면서 덤보는 확실히 엄마를 알아보게 되었고 엄마와의 애착관계도 확실하게 형성되었다. 그러다 한국을 다녀오면서 유모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 관계는 확고해졌다. 30개월이 된 지금도 엄마에 대한 애착은 여전하다. 엄마 얼굴만 보면 짜증을 그리 내는 게 엄마에게 원하는 것이 많아진 덤보다.
이나를 쓴 지 거의 1년이 되었고 다시 르바란이 찾아왔다. 지난 휴가 때는 별말 없이 돌아왔던 이나가 르바란 휴가에서 복귀하고서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나는 아들 하나를 가진 싱글맘이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아이는 처갓집에서 봐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난 휴가 때는 별말 없이 엄마를 보내주던 아이가 이번에는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엄청 썼다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혼한 남편이 이나에게 직접 아이를 키울 것 아니면 본인이 데려가서 키우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는데 뭐 어쩌겠는가. 알겠다고 잘 가라고 했다. 안 그래도 그전 몇 달간 사람이 좀 어둡게 변해서 약간 신경이 쓰였는데 자식이 걱정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대신할 사람이 있냐 했더니 이나는 자기 언니가 일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나는 33살이었는데 언니는 43살이었다. 관상 확인을 위해 사진을 요청했다. 사진을 보니 언니는 거의 할머니였다. 촌에서 직사광선을 많이 받는 현지인들은 겉늙는 경우가 많은데 언니가 딱 그런 모습이었다. 사실 언니의 모습에서 크게 호감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당장 대체할 사람도 없는 데다 인력사무소에 또 비용을 내고, 사람을 뽑고, 가르치고, 맘에 안 들면 교체하고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던 우리는 일단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씨티를 만나게 되었다.
언니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너무 늙어 보이는 데다 말도 어눌했다. 약 한 달 정도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일은 잘했다. 한번 가르쳐준 것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었다. 덤보랑도 너무 잘 놀아줬다. 덤보도 너무 좋아했다. 씨티는 정말 할머니처럼 덤보를 대했다. 그래서 괜찮은가 싶다가도 우리가 말을 걸면 대답이 영 어눌한 것이 알아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의심은 완전히 불식되었다. 씨티는 동생만큼 똑똑했고 유모로서는 동생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다만 굉장히 내향적인 데다 동생보다 배움이 짧아 말이 조금 어눌했던 것 같다. 지금 덤보는 외출을 한 후 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다가도, “집에 가서 씨티랑 놀까?” 한마디에 차를 탈 정도로 씨티를 좋아한다. 우리도 아주 만족스럽다.
씨티는 17살에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아직까지 지방에는 남아있는 조혼 풍습 때문이다. 하나 있는 아들은 이제 26살이라고 했다. 고작 37의 나이에 성인 아들을 두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나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말이다. 앞의 두 유모 모두 르바란이 지나서 어린 자식을 보살피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르바란 보너스를 받고 관두자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2개월 하고 2주가 지나면 르바란이다. 씨티는 보살필 아이가 독립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다.
새해 조공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