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면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윤 Feb 23. 2020

편하게 버렸을까요?

이어폰의 공동책임론



잘 지내시나요. 오랜만에 편지해요.


-


이어폰을 새로 샀어요. 그동안 저를 지켜주던 이어폰의 한쪽이 고장 나서요. 제가 노래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잘 아시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미뤘네요. 고장 난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요. 이어폰 잭 부분을 배배 꼬아 간신히 각도를 맞추면, 양 쪽이 다 들리기도 해요.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는데, 더는 안 될 것 같아서요. 보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


처음으로 산 무선 이어폰은 제 생각보다 더 편했어요. 귀가 좁아 제대로 안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금세 적응됐어요. 또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항상 선을 짧게 하려고, 손으로 몇 번 감아쥐고 있었잖아요. 양 손이 자유로우니까 더없이 좋아요. 한쪽만 듣고 싶을 때도, 지저분하게 목에 걸치고 있지 않아도 돼요. 깔끔하고, 왜 그렇게 주변에서 무선 이어폰을 추천했는지 알겠어요. 미뤘던 시간이 아깝네요.


또 그거 아세요? 분실에 대비해서 무선 이어폰은 한쪽만 판매하기도 해요! 늘 그랬잖아요. 이어폰은 양 쪽이 동시에 고장 나질 않았어요. 언제나 한쪽만. 왼쪽, 오른쪽 중 어느 쪽이 자주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쪽이 먼저 고장 났어요. 그 불쾌한 잡음 타는 소리와 함께 말이에요. 그런데 이젠 한쪽이 고장 났다고 연대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요. 고장 난 한쪽만 바꾸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이에요. 아무 일 없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니. 참 편해졌네요. 그렇죠?


-


봉투 뒷면에 적힌 추천곡은 보셨죠? 알고 계시겠지만, 언제나 편지봉투에 적는 노래는 제가 편지 쓰면서 듣는 노래예요. 오늘도 마찬가지죠.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으로 들었어요. 고장 난 이어폰이 문득 눈에 띄었거든요. 분명 연결되어 있는데 오른쪽은 차단된 것처럼, 소리는 왼쪽에서만 들려요. 버티지 못한 건 한쪽인데, 두 쪽 다 쓸모가 없어졌어요. 이어져있어서 그럴까요. 


각자의 책임이래요. 한쪽만 구매하면 아무 일 없듯 대체된다는 편리한 일이, 조금은 차가운 것 같아서요. 속상했어요. 참 이상한 곳에서 슬퍼져서 편지를 써요. 늘어진 이어폰을 보면서, 왜 네가 떠올랐는지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건 고장 난 오른쪽의 책임이었을까요? 같이 나누지 못했던 모두의 책임이었을까요? 차라리 양쪽 모두 안 들렸다면, 제가 조금은 편하게 버릴 수 있었을까요?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쓸 데 없는 말이 길었네요.

부디 편한 밤 되시길 바라요.




매거진의 이전글 점멸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