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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Mar 05. 2018

오늘 피어난 마음 위로 내일은 비가 올 거야

환절기와 고래의 이야기

환절기 (換節期) [환ː절기]
[명사] 철이 바뀌는 시기.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일교차가 크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주기와 함께 찾아오는 말. 그것은 분명 다시 또 찾아온다.

    

소문 없이 새벽에 날아든 불청객과의 눅눅한 동침을 끝낸다. 창틀을 두드리다 어느새 이불속으로 침투한 습기.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 것이 언제였더라. 오늘은 조금 힘이 들 것 같다. 엉킨 머리를 손으로 긁는다.


이번에는 꽤 길었다. 매일 빼놓을 수 없는 아침의 양치질처럼. 빠듯한 시간은 느린 칫솔의 탓이다.

언제나 하루는 이 시간에 결정된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어찌 보면 탄생의 순간부터 내 삶에 어느 것 하나 선택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미 정해진 일을 고지서처럼 받아 들고 준비할 뿐. 다행인 것은 오늘은 수면 . 숨 쉬는 일을 걱정하진 않아도 되겠다. 그러니까 이렇게 글을 쓴다.




고래에겐 숨을 쉴 시간이 필요해. 살기 위해 숨도 쉴 수 없는 수면 아래에서 긴 시간을 견뎌지. 하지만 결국 물 위로 올라와 참았던 그 깊고도 무거운 숨을 내뱉는 거야. 뿜어져 나오는 긴 한숨에 누군가 다치지 않을까 눈치를 보면서, 그는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고 수면 아래로 들어가. 육지에서 살 수 없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캄캄한 물 속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이야. 깊은 곳에 숨겨둔 마음을 위해.


By. Purple Star.




가끔은 빗겨 난 우울에 이렇게 오래 주저앉아있기도 한다. 환절기의 일교차 같이 아침 저녁으로, 나도 모르게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 조절할 수 없는 응어리 진 마음은 나를, 너를, 우리를 괴롭힌다. 떨쳐버릴 용기도 앗아가고, 그저 이렇게 앓는다. 태풍이 오기 전, 창을 보수하듯 스스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나는 숨는다.

하나만 했으면 좋을 뻔했다. 누군가 말했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어쩌면 그 수면 밑에서 나도 적응했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잠들고 잠에서 깨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하루를 버티는 법을 찾아내거나,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하나가 됐을지도.

이유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참 기분 나쁜 일이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무엇이 될까. 변덕스러운 환절기의 날씨보다 나는 더 크게 요동친다.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나는 그저 나일뿐이다. 이 이야기들은 어떠한 기록의 형태로든 남을 테고, 나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잠깐 허용된 한숨만을 내쉰다.

매일처럼 챙겨보는 일기예보의 기사 댓글에는 욕이 가득하다. 더는 믿지 못하겠다더라. 일 없이 손에 들린 무거운 우산이 때론 귀찮지만, 스치는 노래에도 토라지는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데 누굴 욕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처럼 더 이상의 믿음은 없다. 내게.


오늘 피어난 마음 위로 내일은 비가 올거야. 간신히 굳어진 마음을 적시는 비. 나는 오늘도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다. 젖은 바닥이 당신의 신발을 더럽힐까 봐. 그래서 숨은 되도록이면 짧게 내쉴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내게 엮여버린 가여운 사람들을 적시지 않게, 숨을 참는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를 지킨다.


때론 비에 젖은 꽃이 더 아름답듯, 가끔은 젖은 마음이 네게 닿았으면 싶은 아침이다.

오늘 양치질은 조금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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