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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Jul 06. 2018

더는 기대 없기에, 이제서야 후회

기대에 기대어


기대 (期待/企待) 
[명사]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




숙인 시선이 발끝에 내려앉는다. 식은 벚꽃은 내 걸음에 날린다. 짧은 수명을 지닌 것들에 대한 메마른 탄식은 없다. 분홍빛 꽃잎을 늘 내려다봤다. 그저 아, 봄이구나. 올해도 신세를 졌습니다. 끊이지 않는 햇빛에 봄이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우산의 그늘에 보호받지 못하는 바지 끝자락이 조금 물든다.      




불투명한 것들과 흩어져가는 것들. 저울은 어디로 기울까.     


늘 고개를 숙이고 걸었기 때문일까, 지난 뒤에야 무언가를 알아채곤 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신화의 에피메테우스 이야기는 경고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깨달았다. 땀 맺힌 손바닥에 남는 것은 항상 과거였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과거는 흐르지 않았다. 가만히 멈춘 그 안정성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불안하고 흐물거리는 미래는 두려웠다. 단단한 덩어리가 된 과거를 굴린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항상 바쁘셨다. 야쿠르트가 먹고 싶었던 아이는 빨간 피를 손에 쥐고서야, 얼린 것들은 칼로 자르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야쿠르트 하루쯤 먹지 말걸.     


될까, 안될까 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걸, 친구들 사이에서 ‘똥강’이라고 불리던 개천에 신발주머니를 빠트리고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돌다리는 반에서 가장 앞에 서던 짧은 다리의 아이가 건너기엔 무리였다.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포장된 길로 갔어야 했는데. 아니면, 지금은 메꿔진 ‘똥강’을 더 빨리 메꿨어야지.     


‘잘해줘야겠다’ 보다는 ‘잘해줄 걸 그랬다’가 늘 가까웠어. ‘안녕’, 더 따뜻하고 크게 말할걸.     


추위보단 눈이 내려야, 더위보단 비가 내려야, 벚꽃이 피기보단 벚꽃 떨어져야, 쓸쓸함보단 낙엽이 굴러야 내가 태어났던 가을이 왔구나, 실감이 났다. 깨달은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복기다. 작년 이때는 뭐했더라. 작년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는데. 내년은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뭐가 중요하랴. 아마 지금보다 불행할 거야. 행복은 순간이고, 불행은 쌓여왔으니까. 그때 조금 더 잘할걸. 과거에 차이는 후회가 한 번 더.      


기대는 두렵고 후회는 쓰다. 상상에 닿지 못하고 민망해진 손가락은 어디를 가리켜야 할까. 경험해보지 못한 좌절보단 익숙해진 패배가 부드러웠다. 기대를 불어넣어 한껏 부풀어 오른 미래는 커다란 풍선처럼 언제 터질까 불안하기만 했다. 사실 미래를 담아낼 자격이 없는 부끄러운 방관자다.          




네 우산은 투명했다. 그리고 내 우산도. 비는 문자 그대로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은 왜 도통 발전이 없나 하고 늘 흠뻑 젖은 바지를 보며 생각했지만, 오늘은 그런 걱정을 접어뒀다. 늘 그렇듯 걱정이 앞섰지만, 예상보다 밝은 표정에 내심 안심했다. 꿈을 꾸었다고 했고, 내겐 비밀이라고 말했다. 비밀을 궁금해야 하나 하고 쉽게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사이 조금 벌어진 거리를 기다리듯 너는 제자리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따라잡은 시선이 벚꽃을 올려다본다. 꽃들의 틈을 간신히 헤집고 나온 가로등 불빛이 이마에 닿았다. 그 분홍빛이 조금 따뜻했던 것 같다. 가만히 선 네가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가로등과 벚꽃과 가득 내려앉은 밤이 섞인 그 사진을 보이며 우리가 웃었다. 사실 벚꽃은 짙은 밤에 잡아먹혀 보이지도 않았는데. 예쁘네요, 또 찍으러 가요, 하고는 우리는 돌아섰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이야기를 또 했더라. 나는 우리의 3개월에 몇 년 치의 후회를 온전히 두고 왔다.      





감히 네 시간을 원했고, 너와 내가 아닌 우리를 바랐고, 

내가 감히, 미래를 꿈꿨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내가 감히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그 봄의 후회는 조금 깊었던 것 같다. 아직도 가끔 흔들릴 

만큼. 그렇게 몇 년 치의 후회를 가불 해주고 나서야 나는 기대란 걸 배울 수 있었다. 더 나아지고 싶었고, 후회의 쓴맛보단 기대가 주는 달콤함에 기대는 법을 알았다. 이젠 너를 향한 기대는 없으니까, 후회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제서야 충분한 후회를 해.


사실 무작정 좋았다고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날 배웠듯 새로운 기대를 찾을꺼야. 이렇게나 두서없는 글을 적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 오늘 밤엔 네가 늘 그랬던 것처럼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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