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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는 이야기 <초속 5센티미터>

by 영화가 있는 밤
이 작품은 '인연의 다양한 방향'에 대한 영화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프로듀서는 국내에서 370만 명 이상의 관객 수를 모은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다. 그가 만든 작품답게 첫사랑의 서사, 별이 내리는 하늘의 일러스트가 많이 활용되었다. 사건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노을 등의 색감을 중시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심야 식당> 시리즈처럼 챕터화되어 있다. 1화는 '벚꽃 이야기,' 2화는 '코스모너트'라는 제목을 가진다. 주로 꽃을 주제로 한 소제목이다. 첫 번째 챕터는 첫사랑을 다룬다. 주인공은 '토노 타카키'와 '아카리'이다.


# 첫 번째 이야기. 첫사랑이라는 인연


두 소년 소녀는 13살 때 벚꽃이 흔날리는 기찻길에서 처음 만났고, 매우 잘 맞는 절친이었다. 하지만 두 소울메이트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데 이는 아카리의 전학 때문이다. 반 년, 또는 가을, 겨울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카리는 타카키에게 잊지 않고 편지를 써준다. 이때부터 1화는 중학생이 된 타카키가 전학 간 아카리와 1년 만에 만나기 위해 폭설을 뚫고 전철을 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초속 5센티미터'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에 따르면 이것은 벚꽃이 내리는 속도라고 한다. 봄에 잠깐 피는 벚꽃은 봄비가 오고 질 때 1초에 5cm씩 흩날리는 것이다. 이 속도는 단순히 꽃의 지는 속도만이 아니라 타카키와 아카리의 관계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벚꽃이 각자의 속도로 땅에 닿듯이, 타카키와 아카리도 느리지만 언젠가는 서로에게 닿는 것이다. 이 속도가 느린 듯 느리지 않은 초속 오 센티미터와 닮았다.


이렇듯 애틋한 두 사람의 사랑은 실제 첫사랑과 많이 닮았다. 상대방과 이어지건 그렇지 않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은 매우 낮다.


<번지점프를 하다> 명장면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에 밀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 (중간 요약)
지금 니들 앞에, 옆에 있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엄청난 확률로 만난 거고
또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 거다.


여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명대사를 인용하겠다. 위 대사처럼 엄청나게 적은 확률로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다. 타카키와 아카리도 마찬가지다. 더군다가 만난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해줄 확률은 기적에 가깝다. 비슷한 대사가 영화 <노팅힐>에도 나온다.


이렇게 소중한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타카키와 아카리도 마찬가지였다. 폭설 때문에 약속시간에서 4시간이나 지나 겨우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차가운 겨울밤의 역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부여잡고 눈물을 떨구는 장면은 만남에 대한 간절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난로 앞에서 도시락과 주먹밥만 먹어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에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맨스 영화인 만큼 작품에서 1화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상징하는 벚나무 아래에서 입맞춤을 한다. 보통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맞춤을 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타카키와 아카리는 어렸을 때 서로를 맺어준 벚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확인한다. '초속 오 센티미터'라는 제목과 연관지어 인연의 매개체를 벚나무로 상징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에서 타카키의 대사는 사랑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 순간 영원이나 마음이나 영혼 같은 게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3년 동안 살아온 전부를 서로 나눠 가진 듯했고


세상에서 '처음'이라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첫 뒤집기, 첫 걸음마, 첫 산책, 그리고 첫 사랑까지. 처음이 있기에 모든 일들이 서툴지만 동시에 설레는 것이다. 그래서 타카키와 아카리의 첫사랑은 결과가 어떨지 몰라도 만남이라는 기적, 그리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값지다는 것을 보여준다.


# 두 번째 이야기. 짝사랑이라는 인연


2화는 타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라는 고등학생 소녀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조금 어려운 정의이지만 '코스모너트'라는 제목의 이번 화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짝사랑은 슬픔과 행복이라는 감정의 양쪽을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기쁘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에게 가 있음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슬픔은 말로 하기 어렵다. 카나에는 이렇듯 시소 같은 마음을 잘 표현한다.


카나에는 어리기에 풋풋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안타깝지만 순수하기도 하다. 특히 그녀가 타카키를 보면서 '자신이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흔들었을 것'이라는 대사가 재미있다. 타카키가 그녀에게 '같이 하교하자'라는 식의 작은 호의를 보여도 그 배려 하나에 설레는 것이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카키의 마음 속에 그녀는 없다. 매일 스쿠터를 타고 같이 하굣길을 가더라도 타카키는 노을 진 하늘을 볼 때마다 아카리를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이번 작품에도 날씨, 별 등의 기상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타카키는 '초속'이나 '시속' 등의 단어를 들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아카리가 이야기해준 벚꽃이 지는 속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카키는 자주 별이 보이는 하늘 아래에 아카리와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2화에서는 '우주선'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타카키의 상징이다. 고독하게 목표를 향해 가는 그의 모습인 것이다. 아마 아카리를 향해 외롭게 걷는 그의 모습이자, 그녀를 지키기 위해 꿈을 달성해야 하는 무언의 책임감일 수도 있다.


결국 카나에도 타카키의 마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아마 짝사랑을 한 번쯤 해보았다면 그녀의 심리상태에 스며들 것이다. 상대의 마음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카나에도 자신의 길을 걷기로 한다. 영화에서 '우주선'과 더불어 '서핑'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카나에의 도전을 나타낸다. 그녀는 서핑에 서툴지만 작은 시도부터 꿋꿋이 해나가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꿈이 있다면 작은 걸음부터 내딛는 것이다. 작품 속의 카나에처럼 명확한 꿈이 없어도 괜찮다. 무엇이든 시도하다 보면 어떤 방향으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짝사랑을 하건, 연인이 되건 그런 감정 또한 어떤 경험이 될 것이다. 씁쓸한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을 만나 웃었던 기억도 남는다. 슬픈 인연을 뒤로 하고 서핑보드를 타는 카나에의 모습에서 그녀가 앞으로 걸어갈 인생길이 기대가 된다.


# 세 번째 이야기. 추억이라는 인연


추억을 인연이라 표현하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굳이 이런 소제목을 붙인 이유는, 추억이라는 것도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3화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지나간 인연에 대한 반추이기도 하다. 타카키는 아카리를 마음에 품은 후부터 교제했던 사람들과 진지한 관계를 잇지 못했다. 3화에서 잠시 등장하는 인물인 '미즈노 양'은 3년간 타카키와 연애했지만 마음이 1cm밖에 가까워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는 더 이상 서로의 연인이 아니다. 특히 아카리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


그래서 3화를 보면 이 작품은 아련한 첫사랑에 대해 삼 화에 걸쳐 노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 분)' 캐릭터가 말했듯, 첫사랑은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구나 처음 사랑에는 서툴러서 평생의 인연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첫사랑은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생겼으리라.


만약 결말이 타카키와 아카리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서로와 이어지는 식으로 나왔다면 관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제작진들은 조금 다른 결말을 취했다. 첫사랑이 꼭 평생의 사랑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동시에 추억이라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추억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씁쓸함이 동반된다. 어찌 되었든 뒤에 남겨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곱씹으면 여운이 느껴진다. 비 오는 날 느껴지는 운치 있음, 또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것이 추억이 가진 힘이다. 결국 추억도 누군가와 보냈던 시간이기에 첫사랑, 짝사랑, 그리고 추억이 되어 버린 인연까지 모두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다.


영화의 마무리는 <너의 이름은>과 비슷하다. 타카키의 창가에 벚꽃이 내리고, 타카키와 한 여인은 벚꽃이 흩날리는 기찻길 사이로 서로를 돌아본다. 그녀의 얼굴이 아카리와 닮았지만 타카키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다. 마치 <너의 이름은>에서 긴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를 돌아보며 눈물짓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때 타카키가 씁쓸하지만 미소를 짓는 장면은 아카리의 기억이 아프더라도 삶의 거름처럼 남았음을 보여준다.




<초속 5센티미터>의 모든 화들은 타카키가 시간과 미래라는 사랑의 장벽을 뚫고 아카리에게, 또 성장하는 자신에게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설명할 수 없는 힘들로 이어지는 사랑이라는 소재를 세 방향에 걸쳐 표현한 작품이다. 한 편 한 편이 다음 회차의 받침이 되는 이야기이자 인생에서 인연이라는 소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주는 영화, <초속 5센티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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