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신뢰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 내내 신뢰가 키워드이다.
'쿠만드라'는 500년 전 '드룬'의 공격을 받아 용의 신체 부위를 따서 5개의 부족으로 갈라졌다. 각각 꼬리, 송곳니, 척추, 심장, 그리고 발톱의 땅이었다. 마지막 드래곤인 '시수'가 용들의 모든 힘을 모아 젬'을 남겼는데, 이를 다섯 부족 중의 핵심인 심장의 땅 부족들이 지키고 있다. 이 심장의 땅 공주가 '라야'이다.
영화에서 라야는 선을 상징한다. 그녀와 대비되어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나마리'이다. 두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다르다. 라야와 아버지 '벤자' 족장은 최대한 사람들을 신뢰한다. 그는 분열된 쿠만드라가 다시 합쳐질 수 있고 사람들도 화합을 바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나마리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인물이다. 그녀는 라야에게 친구인 척 가장해 라야를 배신하고 용의 젬을 빼앗으려 한다. 벤자 족장은 타 부족에게 화합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나마리는 끝까지 젬을 빼앗으려 라야를 배신한다.
나마리가 그렇게 악한 인물이 된 데에는 그녀의 어머니 영향이 컸다. 어머니 '비라나'는 송곳니의 땅 부족장으로서 자신의 부족만을 지키기 위해 젬 다섯 조각을 모두 빼앗으려 하고, 마지막 남은 용도 차지하려 하며 쿠만드라의 분열을 이끈다.
라야와 나마리가 각각 심장, 송곳니의 땅 공주라는 것도 흥미로운 상징이다. 심장은 보통 선, 일체, 혹은 중심을 상징한다. 심장을 중심으로 다른 부위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곳니는 공격을 상징한다. 다른 부족을 물어뜯고, 화합을 눈앞에 두고도 젬을 차지하려 한 송곳니의 땅 부족처럼 말이다.
영화의 주요 소재로 나오는 드래곤과 '드룬'도 중요한 상징이다. 드래곤은 선을 상징한다. 마지막 드래곤 '시수'는 물의 용으로서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놀고, 물로 사람들을 구하며 부족 사람들에게 생명을 선물한다. 하지만 '드룬'은 보라색 어둠으로 표현되며 부족인들의 땅을 파괴한다. 사람들이 드룬을 만나면 돌로 변한다는 설정은 드래곤과 대비되는 드룬의 파괴력을 상징한다. 물은 동식물과 같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인다. 하지만 돌은 무생물이다. 따라서 드래곤과 드룬은 선과 악, 물과 불의 이미지로 대비된다. 특히 드룬이 물에서만 약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드래곤과의 대비는 극대화된다.
나마리에게 배신당한 라야는 신뢰에 대해 믿음을 잃는다. 그녀는 돌로 변한 아버지를 되살리기 위해 시수를 찾아 헤매고, 타 부족에게서 젬을 되찾아 하나로 모으려 한다. 나마리에게 손수 젬을 보여줄 정도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던 라야가 나마리의 배신으로 모든 신뢰를 잃는 모습은 안타깝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벤자와 라야가 보여주는 신뢰는 놀랍다. 끝까지 나마리에게 손을 내미려는 것도 라야이다. 두 사람이 가장 어두운 상황 속에서, 가장 믿기 힘든 상대를 믿으려는 모습들이 나오는데, 이 두 부녀는 신뢰에 대가가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쿠만드라의 부족 사람들이 똑같이 취하는 제스처는 그 자체로 믿음을 상징한다. 머리 위에 양손을 올리고 원을 만들어 보이는 행동이다. 옛날부터 원은 음과 양의 조화, 또는 완전함을 상징했다. 태양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 원은 하나로 합쳐짐을 상징한다. 쿠만드라가 합쳐지길 바라는 라야와 벤자의 소망이 담겼다.
이처럼 많은 상징이 존재하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다양한 신스틸러의 등장으로 흥미를 더했다. 먼저 '분' 선장이다. 어린 꼬맹이인 그는 드룬을 피하기 위해 수상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선장이자 셰프이자 재무이사까지 담당한다는 그의 인사말은 큰 웃음 포인트이다. 또 아기 '노이'도 등장한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지만 이 아기도 어마무시한 반전을 가지고 있다. 아기마저 반전을 품고 있다는 것은 분열된 쿠만드라가 말세(?)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이의 귀여움은 무시할 수 없다.
이외에도 디즈니 영화에서 귀여운 동물 캐릭터는 단골 소재인데, '툭툭'도 마찬가지이다. 툭툭은 공벌레처럼 굴러 다니며 딱딱한 등껍질을 위에 얹고 아래에는 털이 북실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는 매우 귀엽게 묘사되는데, 라야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손바닥만 하던 그가 6년 만에 라야가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사실은 매우 놀랍다. 영화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라야가 타고 다니는 둥근 것이 바로 툭툭이다.
툭툭뿐 아니라 영화의 주요 생명체인 용들도 각기 다른 마법을 가지고 있다. 비를 내리게 한다거나, 안개를 자욱히 풍기는 등이다. 다섯 마리 용마다 다섯 가지 마법이 있으니 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이다. 특히 용들 중 마지막 드래곤 '시수'가 젬을 남긴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이것 또한 제작진들이 신뢰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포인트이다. 상대가 자신을 믿고, 자신도 상대를 믿으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메시지.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계속 나오는 교훈이다.
이번 작품은 디즈니의 획기적 시도가 돋보인 작품이다. 디즈니가 재택근무를 통해 선보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관객들의 높은 평점과 탄탄한 스토리, 뛰어난 연출 등을 고려할 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 걸작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근무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런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디즈니의 영화적 지평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문화적 배경이 많이 등장해 새로움을 더한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 네이버 영화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