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한 사랑을 코믹하게 표현한 로코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서 감상 포인트를 덧붙이는 식으로 리뷰를 작성해 보았다.
앤디는 가장 잘 나가는 여성지 컴포저의 기자이고, 벤자민은 컴포저 등 잡지에 광고를 싣는 광고 회사 직원이다. 벤자민이 오래 전부터 준비한 ‘드 라우어’라는 다이아몬드 회사의 광고를 따내려 했는데, 같은 회사의 다른 직원들이 해당 다이아몬드 광고를 배정받는다. 그래서 벤자민은 자신의 광고를 돌려받기 위해 무리한 미션을 받는다. 바로 10일 안에, ‘드 라우어’ 회사의 파티 전에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영화 줄거리를 형성하기 위해 그의 미션과 광고 사이에 연관성은 크게 없어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벤자민이 다이아몬드를 소비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광고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된다.
어쨌든 그래서 벤자민은 바에서 만난 ‘앤디’와 10일 동안 연애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정리하자면 그는 앤디와 10일 동안 연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앤디 또한 미션을 수행 중이었다. 그녀는 컴포저에서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주제로 기사를 배정받았고, 이에 따라 10일 동안 한 남자의 마음을 얻은 후 그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해서 이별을 통보받아야 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앤디가 기사의 영감을 얻은 것은 그녀의 친구 ‘미셸’로부터였다. 미셸이 10일 이상 오래 연애를 이어가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앤디가 기사를 생각해 낸 것이다. 주제 기사를 쓰기 위해 이때 앤디는 벤자민을 상대로 선택하고, 그가 싫어할 법한 행동들을 해서 점차 자신에게 정이 떨어지도록 만든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앤디와 벤자민의 연애 목표 기간은 같되 목표가 상반된다는 것이다. 앤디는 벤자민이 자신을 10일 안에 거절하도록, 벤자민은 앤디가 10일 동안은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코믹한 행동들이 자주 묘사된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연애 고수인지라 앤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벤자민이 자신에게 푹 빠졌다가 정이 떨어지게 만들지, 벤자민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앤디가 10일 동안 점차 자신을 더 좋아하게 만들지를 정확히 알고,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법한 연애 전략(?)들을 실천한다.
가령 앤디는 벤자민을 처음 만난 후 일부러 그녀의 가방을 흘리고 나온다. 그 가방 안에는 NBA 농구 결승전 티켓이 들어 있었고, 앤디는 벤자민이 그 티켓을 발견해 함께 경기에 가자고 이야기하길 바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벤자민도 앤디가 일부러 가방을 놓고 갔음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벤자민은 앤디의 속셈을 간파하는 듯 말하며 함께 가자고 그녀의 미끼(?)를 수락하는 시늉을 한다.
이 결승전부터 해서 앤디의 전략들이 벤자민을 점차 당혹스럽게 만든다. 벤자민은 앤디가 자신에게 푹 빠져 있고, 그녀도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 앤디가 10일 동안 일부러 정뚝떨 행동을 하고 있으리라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우선 앤디는 농구 결승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1분을 남겨두고 벤자민에게 음료수를 사 달라고 부탁한다. 벤자민이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음료수를 사왔지만, 다이어트 콜라가 아니란 이유로 앤디는 새로운 음료수를 부탁한다. 앤디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벤자민은 어쩔 수 없이 새 콜라를 사오지만, 이미 경기는 끝나 있었다. 하지만 벤자민은 그녀에게 짜증을 표현하지 못한다. 앤디만 승리의 환호성을 부르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경기의 결승전을 못 보는 기분, 앤디는 벤자민이 짜증을 느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앤디의 전략은 더해진다. 영화에서 벤자민은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앤디가 그를 방해하기 때문에 벤자민의 노력들은 대부분 헛수고가 되고, 앤디가 주로 목표를 달성했다는 기쁨을 누린다.
이번에 앤디는 질투 표현 작전을 펼친다. 그녀와 벤자민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란 로맨틱 코미디를 함께 보러 가는데, 앤디는 일부러 영화에 집중한 벤자민 옆에서 ‘멕 라이언을 보면서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벤자민에게 서운함을 표출한다. 이것 때문에 벤자민은 영화를 다 보지 못한다. 현재의 연인이 과거의 연인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 이것을 앤디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앤디는 벤자민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작전도 펼친다. 가령 벤자민은 요리하는 남자가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앤디에게 양고기를 활용한 진수성찬을 몇 시간에 걸쳐 준비한다. 그런데 앤디는 눈물을 터뜨리며 채식주의자라고 고백하고 결국 벤자민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채식 레스토랑에 가는데, 이때 앤디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앤디는 주방에서 고기가 들어간 랩을 먹으면서 농구 경기도 놓치지 않고, 벤자민만 경기를 놓치고 자신의 요리도 먹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앤디는 벤자민이 좋아하지 않는 인형들, 강아지, 식물로 그의 집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녀는 연애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의 가족 앨범’이라는 것을 만들어 벤자민에게 선물한다. 연애 기간이 짧음에도 앤디는 벤자민에게 가족을 형성한다는 미래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에게 당혹감과 부담감을 준 것이다. 그리고 앤디는 벤자민에게 2~3분에 한 번씩 연락을 한다. 개인 생활과 연애의 균형을 지키려는 벤자민에게 앤디의 잦은 연락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영화의 또다른 아이러니는 벤자민이 앤디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에는 다소 을처럼 묘사된다. 벤자민은 연애를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앤디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져도 그녀의 행동들에 장단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의 코믹함이 강조된다. 앤디는 벤자민과 관계를 망치려고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고, 벤자민은 그럼에도 앤디가 떠나지 않도록 그녀를 잡으려는 장면들이 코믹하게 묘사된다.
독특한 것은, 앤디는 벤자민의 목표를 전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10일 안에 연애를 끝내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벤자민에게 짜증을 주려는 행동의 수위를 높여가고, 자신의 이상한 행동들을 벤자민이 다 받아주는 것을 보면서 목표를 이루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편 벤자민도 앤디가 자신에게 호감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점이 독특하다. 앤디는 벤자민이 자신의 이상한 행동들을 다 받아주는 것에 나름의 승리감을 느끼지만, 사실은 벤자민도 그의 목표에 따라 앤디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 함정 코믹 포인트이다. 사실은 둘 다 자신의 목표에 따라 관계를 이어가고 있고, 정작 앤디와 벤자민은 서로의 목표를 전혀 모른 채 상대방이 자신의 장단에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다른 로코와 마찬가지로 벤자민과 앤디 모두 서로에게 진심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특히 사랑이 싹튼 계기는 앤디가 벤자민의 본가가 있는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찾아간 것부터였다. 여기서 앤디와 벤자민네 가족은 ‘뻥치시네’ 게임을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상징이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뻥을 치면서 각자의 직업적 이유로 상대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벤자민이 지는 것 또한 상징일 수 있다. 이전까진 벤자민이 그 게임의 1등이었는데, 그가 처음으로 앤디에게 진다는 것은 벤자민이 앤디를 만난 이후부터 두 사람이 더이상 뻥을 치지 않고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복선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벤자민과 앤디가 섬에서 같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도 나온다. 이때 벤자민이 앤디에게 바이크 타는 법을 알려주는데,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진짜 연인들처럼 입맞춤을 나눈다. 그리고 앤디도 처음으로 자신을 반성한다. 그간 벤자민을 골탕 먹이려고 했는데, 벤자민의 어머님께서 그녀에게 놀라운 말을 들려주셨기 때문이다.
지금껏 벤자민이 집에 데려온 여자는 네가 처음이란다.
여기서 앤디는 감동을 받고, 벤자민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보인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또 위기를 겪는데, 약속했던 10일이 다가온 것이다. 사실 10일째가 다가오면 앤디가 더 초조한 상황이다. 그녀는 10일 안에 관계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벤자민은 그녀와 다르다. 그는 최소 10일만 채우면 되고, ‘드 라우어’의 다이아몬드 파티에서 앤디와 함께 가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벤자민은 10일 이상으로 관계를 더 이어가는 것이 괜찮다는 뜻이다. 여기서 앤디와 벤자민의 입장 차이가 생기면서 관객들은 초조해하며 결말을 보게 된다.
*스포 있습니다*
예상대로 드 라우어의 다이아몬드 파티에서 앤디와 벤자민은 서로의 계약 연애에 대해 알게 된다. 벤자민이 다이아몬드 광고를 따내기 위해 앤디를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 앤디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기사로 쓰기 위해 벤자민에게 일부러 못된 행동들을 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결국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영화의 포인트는 두 사람이 실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10일 동안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광고나 기사에 대해 모두 잊고 서로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 예로 앤디는 기사에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를 놓쳤다’고 실제 마음을 고백한다. 이 부분이 영화 첫부분에서 앤디가 의도했던 기사 내용과 차이가 있고, 10일 동안 자신도 모르게 변화한 앤디의 마음을 표현한다.
특히 앤디와 벤자민의 재회를 돕는 계기로서, 두 사람 모두 각각 기사와 광고 모두를 성취해 내지만, 두 사람의 성취가 원했던 것과 다른 모습임이 드러난다. 먼저 앤디는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이번 주제 기사를 쓴 것이었는데, 사장은 여전히 그녀가 원하는 이슈가 아니라 <컴포저>에 맞는 주제를 쓰도록 요구한다. 결국에 앤디는 벤자민에 대한 사랑, 앞으로 쓰고 싶었던 기사, 즉 사랑과 일을 모두 놓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앤디가 깨달음을 얻는 또다른 계기로서 미셸과 그녀의 전 남자친구 ‘마이크’의 재회 씬이 나온다. 사실 항상 미셸은 연애에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다 보니 다시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과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고 앤디는 자신이 벤자민에게 진심을 표현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주제 기사를 쓴다는 목적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앤디는 진정한 사랑, 벤자민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벤자민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결말에서 두 등장인물 모두 ‘진심’에 대해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벤자민도 앤디의 마음이 담긴 기사를 읽은 후, 자신이 처음에 광고를 얻기 위해 앤디를 만나려 했음을 후회하고, 앤디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에는 아이러니가 많다. 앤디와 벤자민 모두 일 때문에 10일 동안 거짓 사랑을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 연애 중에 ‘진짜 사랑’에 빠지고, 최종적으로 상대와 ‘진심 어린 사랑’을 이루길 고대하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았기 때문에 영화의 명장면으로서 다리 위 재회 씬이 나온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장면이다) 벤자민이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잡지사를 그만두고 도망치는 앤디를 붙잡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리 위를 달리는 앤디를 쫓아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관객 분들이 예상하듯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옛날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앤디와 벤자민이 생각하는 연애 전략, 상대는 이걸 좋아하고 이러한 것은 싫어할 것이야, 등의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서로 계약 연애처럼 되어 가는 모습들이 있어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다만 2000년대 초반 로맨틱 코미디를 운운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고, 코믹한 분위기와 케이트 허드슨, 매튜 맥커너히 배우의 로코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