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팽글리쉬>는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문화적 차이를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일상적인 주제 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으로 문화권의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자녀 양육 문제 등이 그렇다.
영화는 인간의 내재적 감정을 깊게 다르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양파 껍질을 드러내듯 여러 표층을 들추고 고민해야 제작진이 말하고자 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알 수 있다. 보통 문화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는 언어, 바디랭귀지, 먹는 방식 등 생활양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스팽글리쉬>에는 언어 차이 외 어떠한 소재도 활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일반적인 감정들을 표현한다. 소원한 부부 관계,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에 있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견해차이, 혼자 낯선 문화권에서 딸을 키우는 어머니가 딸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 못해 서운한 마음 등을 표현한다.
이렇듯 서로 다른 클라스키네 가족과 모레노의 가족이 만나 서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점점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 엉키기 마련이다. 이들의 관계도 엉키면서 문제점도 드러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들은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회귀한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클라스키와 모레노의 가족들, 그들은 각자의 바운더리 안에 살고 가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다. 예를 들어 '데보라'는 가사도우미 없이 남편이나 딸과 대화도 어려워했지만, 그녀는 스스로 가족구성원과의 관계를 해결하고, '플로르'도 잠시 외로워했지만 남편 없이도 크리스티나가 자존감 있는 소녀로 자라도록 돕는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처음 소재는 멕시코에서 온 '플로르'와 미국의 '데보라'네 가족 간에 벌어지는 언어적 장벽이다. 이와 관련해 코믹한 장면도 등장한다. 플로르가 데보라의 남편 '마이크'와 싸울 때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딸 '크리스티나'가 플로르의 모든 억양과 재스처를 따라하며 통역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모녀가 닮은 모습으로 나오는데, 언어적 장벽은 플로르와 마이크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플로르가 영어를 배웠을 때 마이크가 그녀와 감정이 통했음을 느끼는 장면을 본다면, <스팽글리쉬>에서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뿐 아니라 감정 교류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로르와의 관계뿐 아니라 데보라와 마이크는 부부 관계가 소원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그들의 성향 때문이다. 먼저 데보라는 뭐든지 완벽하게 해내려 하는 열혈 어머니지만 자존감이 낮고 불안함이 높다. 마이크는 그런 아내를 쉽게 위로하거나 그녀의 마음을 쉽게 헤아리지 못한다. 한편으로 마이크는 마이크대로 자신의 이해심 깊은 성품 탓에 가족이 자신을 감정 배출구라 생각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듯 본인들의 문제를 가진 클라스키네 가족이 모레노 가족과 엮이면서 그들은 서로의 자녀에 간섭하게 된다. 이것이 처음엔 선의로 시작했지만 점차 문제가 커진다. 먼저 소득수준 차이로 인한 비교가 소재로 등장한다. 데보라는 오지랖 또는 관심을 크리스티나에게 쏟음으로써 그녀가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게 지원하고, 필요한 학용품이나 주얼리 등을 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크리스티나는 점점 플로르, 모레노 전통과 멀어지고 클라스키네 가족의 구성원처럼 된다.
위 과정에서 크리스티나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크리스티나가 사립학교에 가는 첫날에 스쿨버스에 오르면서 플로르 말고 데보라에게만 인사를 하는 것이다. 플로르는 이런 장면을 걱정했던 것이다.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가족을 잊고 클라스키네의 호의에 익숙해지는 것 말이다. 플로르는 딸 크리스티나가 데보라네 가족과 같은 소득수준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했다. 데보라네 가족이 아무리 잘해줘도 그것은 백 퍼센트 크리스티나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플로르가 딸에 대해 가지는 기대는 모레노 가족의 일원으로서 고유한 '크리스티나 모레노'로 성장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관점뿐 아니라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녀에 대해 가지는 속상함도 표현된다. 플로르는 크리스티나에게 데보라가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만큼 똑같이 해줄 수 없다는 점 말이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마이크와 플로르를 치유적 관계로 설정했다. 두 사람은 학부모로서 고민을 나누고 서로 치유를 하게 된다. 특히 마이크는 첫 딸 버니스에 대해 데보라와의 갈등이 많다. 데보라는 버니스가 점수를 높게 받으라는 등 표면적인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때 플로르가 버니스는 가슴이 따뜻한 아이라고 그녀의 진면모를 유일하게 알아준다.
그런데 두 사람의 관계는 다소 엉뚱한 장면으로 흐른다. 데보라의 외도 고백 후 마이크와 플로르의 관계가 발전한 것이다. 여기서 끝을 맺고 마이크가 플로르에게 '좋은 사람 만나요,' 하고 플로르도 일을 그만두지만, 위 부분 때문에 관객들의 평이 나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영화는 후반부에서 크리스티나의 대학 입시 시점으로 다시 점프한다. 모레노 가족 구성원이자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한 크리스티나가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이처럼 <스팽글리쉬>는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코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으로서 관객들이 각자의 해석을 덧붙이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