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사라진 이후, 혼란 속에서도 다시 떠오르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
이전 <매트릭스> 시리즈는 자유에 대해 다루었다. '네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라는 AI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에서 깨어나 자의식을 갖고, 현실 세계의 기계문명과 맞서는 내용이었다. 이번 편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스토리는 다르지만 여전히 자유의지를 핵심 키워드로 가져간다.
<매트릭스>는 익숙함과 수동성, 그리고 불편함과 적극성의 대립에 대한 내용이다. 매트릭스 안의 사람들은 코드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봇'들로 불리는데, 이들은 '통제받길 원한다.' 즉 그들은 매트릭스의 운영자 중 하나인 정신과 의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삶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편안함'에 익숙해진 존재들이다.
그러나 주인공 '네오'와 '트리니티'는 다르다. 그들은 가장 먼저 자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인물들이다. 모두가 매트릭스의 '센티널'들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배양하는 '포드'에 갇혀 가상세계에 사는 것을 선택했지만, 네오와 트리니티는 포드에서 깨어나 기계 사회의 실체를 깨닫고 기계 도시를 탈출했다. 그리고 네오는 'The One'이라 불리며 후대 세대들에게 자유의 상징이 되었고, 트리니티 또한 용기의 상징으로 후대 여자 전사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이처럼 자유로운 선택은 원래 어렵다. 결국 <매트릭스>는 그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놀라운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전편의 가치관을 이어가지만, 이전 편들과 다른 점이 많다. 먼저 전편에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기계 도시를 탈출해 한 번 죽었지만, 매트릭스의 운영자 중 한 명이 그들을 다시 살려 포드에 배양하였다. 그래서 이번 편의 부제가 부활을 뜻하는 'Resurrection'이다.
이번 편은 네오와 트리니티가 탈출하고 60년 후의 시점을 다룬다. 영화의 시작은 네오가 '데우스 마키나'라는 게임 회사에서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인기 게임을 개발하는 디자이너로 나온다. 이 시퀀스들만 보면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깨서 현실 세계에서 멀쩡히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제가 부활인 만큼, 이 세계 또한 놀랍게도 가상세계이고 네오는 여전히 매트릭스의 포드 안에서 재구성되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반전은 여러 미장센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네오가 매트릭스 안에서 일하던 회사인 '데우스 마키나'는 기계의 신을 뜻하는 단어이고, 네오가 상담받는 정신과 의사의 고양이 이름은 '데자뷰'이다. 즉 이전 편들의 시퀀스가 매트릭스 안에서 비슷하게 또 벌어질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네오는 또다시 '선택'과 '유지'의 기로에 서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선택지에 놓이고, 네오는 역시 또 빨간약을 삼키며 가상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하는 선택을 한다. 전편과 다른 점은 네오가 이전 편들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러 부활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DSI라는 기술을 통해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얼굴로 재구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기계 도시의 사람들과 매트릭스 안의 캐릭터들이 홀로그램 등을 통해 연결되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특수 입자를 활용해 만질 수 있는 홀로그램의 형태로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기계 도시 밖의 새로운 전사들도 출연한다. 이전에는 네오와 트리니티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후손이 기계 도시의 'IO'라는 공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네오와 트리니티가 남겨준 자유의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벅스'나 '시크,' '렉시' 등이 새로운 전사들로 등장한다. 또 이전 편의 익숙한 얼굴들도 등장한다. 전편에서 아이로 등장했던 '사티'는 네오와 벅스의 핵심 조력자이자 기술자로 등장하고, '나이오베'는 나이가 들어 이제 'IO'를 이끄는 장군으로 나타난다.
또다른 큰 변화로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기계들 모두가 인간의 적이 아니고, 그들 중 일부는 'IO'의 편이 되어 '신씨언트'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네오와 트리니티의 포드 탈출을 돕는다. 또한 전편에서 프로그램의 핵심 수호자로서 네오의 반대파였던 '스미스'가 영화 초반부에는 여전히 네오를 공격하는 입장으로 나오지만, 후반부에는 네오를 도우며 매트릭스의 운영자 중 한 명에 맞서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전편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영화에서 매트릭스 바깥의 핵심 공간으로 등장하는 'IO'이다. 이번 편의 가장 큰 차이는 '영웅이 사라진 이후'에 대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매트릭스> 시리즈 전편들에서는 네오와 트리니티가 핵심 인물로서 사람들의 자각을 도왔기 때문에 모두가 그들을 따랐고 자유의지가 핵심 가치였다. 이번 편에서도 자유의지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지만, '나이오베' 등 'IO'의 사람들은 '후손 세대'라는 큰 차이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들은 리더가 사라진 시대에 적응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일궈 나가야 하는 책임감을 가졌다. 더이상 그들을 이끌어준 네오나 트리니티가 없었기 때문에 나이오베는 전쟁보다는 안전한 공동체를 센티널들로부터 숨기는 데 주력했다. 가령 벅스가 네오와 트리니티를 다시 포드로부터 깨우려 할 때 나이오베는 벅스에게 징계를 내리려 하고, 네오를 찾는 일보다는 IO 안에서 식물들을 키우는 등 공동체 유지에 힘을 쓴다.
그러나 <매트릭스4>는 영웅이 사라진 이후 혼란기에서도 여전히 자유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벅스와 시크, 렉시 등 IO의 젊은 전사들은 신씨언트들과 함께 네오를 포드에서 깨우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사티 등 젊은 인재들이 힘을 합치며, 그들은 트리니티마저 포드에서 깨워내며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을 해낸다.
그리고 <매트릭스> 시리즈 전편의 스토리를 이어 네오와 트리니티는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트리니티는 '티파니'라는 이름으로 매트릭스 안에 더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다시금 현실을 자각하는 데 네오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녀가 네오를 알아본 순간 두 사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두 사람은 염력과 같은 힘을 발휘하며 날아오는 총알, 미사일 등도 피하고 매트릭스 안의 세계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달린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바로 영화 후반부에서 트리니티가 건물 밖으로 떨어져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전편에서는 네오가 하늘을 나는 인물로 등장했다면, 이번 <매트릭스 4>에서는 트리니티가 네오를 넘어선 자유의지를 깨닫는 인물로 나온다. 그래서 이번 편에서 네오는 하늘을 날지 못하지만 트리니티가 부상하며 네오의 손을 잡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비록 트리니티가 60년의 세월이 지나 포드의 티파니로부터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했지만, 결국 날아오르는 인물이 트리니티라는 설정은 이후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트리니티가 네오를 이어받아 자유와 자각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처럼 <매트릭스 4>는 전편들에 비해서는 아쉬운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시리즈의 핵심 가치관을 이으며 관객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준다. 특히 모피어스나 스미스 등 기존의 인물들이 새로운 배우의 얼굴로 등장하고 벅스 등 새로운 리더들이 돋보이는데, 이 또한 앞으로의 매트릭스 시리즈가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