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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Dec 31. 2022

[연말 로코] <미드나잇 앳 매그놀리아>

<러브, 로지>, <원데이>처럼 오랜 친구였던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남녀 간에 친구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경우는 둘 중에 한 사람이 상대방을 좋아한 적이 있을 때이다. 어쩌면 사랑의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되었을 수도 있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이 커플이 될 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각자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드나잇 앳 매그놀리아>에서 매기와 잭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은 함께 지역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평생 절친으로 살아왔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공개적으로 서로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 쌓아온 추억이 가득하기 때문에 장난도 서슴없이 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디로

하지만 이 남녀 또한 완전히 친구 사이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히스토리가 있다. 특히 여자주인공인 매기가 먼저 잭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프롬 전날 매기가 잭과 함께 프롬 파티에 가려 했는데 잭이 막판에 비앙카라는 새로운 파트너와 데이트를 하면서 매기는 크게 상심했다. 영화 초반부에 잭이 학창시절에 자작곡을 써서 장기자랑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스쳐 지나가듯 소개되는데, 이때 매기가 잭을 바라볼 때 마치 그녀의 어머니가 과거 아버지의 연주를 보며 반했을 때 표정과 같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매기가 오랫동안 잭을 짝사랑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짝사랑의 감정은 매기만 느꼈던 것이 아니다. 잭도 매기에 대해 은연중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잭이 매기와 다른 점은, 잭은 자신이 매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도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더라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깨닫다

앞서 잭의 프롬 상대였던 비앙카가 성인이 된 후 현재에 잭과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비앙카는 잭이 매기에 대한 감정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앞서 소개된 과거 에피소드에서 잭이 자작곡으로 썼던 곡에 대해 비앙카는 그 곡이 매기를 위한 노래라고 짚어준다. 잭은 그 말을 듣고 놀라지만 그것은 그가 스스로에 대해 솔직하지 못했던 매기에 대한 감정일 것이다.


특히 잭과 비앙카의 재회 씬은 잭과 매기의 관계의 전환점이 되는데, 비앙카는 잭이 자신과 프롬에 간 후 매기가 슬퍼했으며 잭도 매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잭과 매기는 마치 <슈츠>의 하비와 도나 같고 비앙카는 스코티 같다. 하비와 도나도 변호사와 비서로서 함께 일해오며 서로를 좋아했지만 감정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고, 하비의 전 여자친구였던 스코티가 하비로 하여금 그도 몰랐던 도나에 대한 감정을 깨닫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잭과 매기의 감정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비단 비앙카만이 아니다. 영화에서 잭과 매기는 현재의 로컬 방송을 전국 단위의 라디오 방송쇼를 바꾸기 위해 계약 연애를 시작한다. 마치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처럼 두 사람이 사귄다고 방송 청취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생방송도 촬영하는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의 부모님은 잭과 매기가 사귄다는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너희가 운명의 짝인 줄 알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말하며 오랜 세월 지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인정한 것을 축복한다.


특히 매기의 아버지가 아내에게 주었던 반지를 잭에게 넘겨주면서 ‘You have my full blessing’이라고 잭을 예비 사위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잭과 매기의 연애가 양가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사위로서 장인어른의 완벽한 축복과 허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잭과 매기도 이어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잭과 매기처럼 친구였던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관계가 끝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괜히 고백해서 사귀었다가 헤어지게 되면 서로 다시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와의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에 친구 사이인 남녀가 서로 좋아해왔더라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더 정확하게는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이다. 친구 사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을 털어놓는 것만이 진실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화 <원데이>와의 유사성

잭과 매기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 과정은 영화 <원데이>와도 비슷하다. 항상 주인공 엠마가 덱스터를 먼저 사랑해왔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덱스터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다. 그는 망나니 같이 마음 가는 대로 살며 여러 명의 여자친구와 짧은 연애를 이어가고 엠마의 사랑을 무시해왔지만 최종적으로 혼자 남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엠마에 대한 마음을 인정한다. 잭도 짧은 단타성 연애를 이어오며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다가 매기가 그에게서 떠나가려 하자 자신을 성찰한다.


두 사람이 생방송으로 커플 연기를 하는 전날 밤 잭이 비앙카를 만나느라 매기와의 약속에 늦자 매기와 잭이 나누는 대화가 있다.

잭 평생 계속 나한테 이랬잖아. 난 우선순위에서 젖혀두고 내가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주저 없이 할 거라는 알고 이용하잖아 - 매기
널 잃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 잭

<원데이>의 엠마와 덱스터와 정확히 같은 부분이다. 엠마가 먼저 덱스터를 좋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덱스터는 마음 내킬 때마다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고 결혼까지 하며 엠마의 마음에 상처를 내왔다. 잭도 매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애써 그 감정을 모른 척해온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잭의 변화

결국 잭은 자신이 상처받기 두려워 진짜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특히 잭과 매기의 다툼 후 두 번째 터닝 포인트로서 그들의 라디오 방송이 있다.  보통 잭과 매기가 라디오 방송으로 연애 상담을 해줬지만 그들의 가짜 연애가 생방송을 타는 날 아이러니하게도 청취자가 잭과 매기에게 관계 상담을 해준다.

아내를 한달만에 부모님에게 소개하고 결혼한 남성 청취자였는데 그는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잃는 게 훨씬 더 두려웠거든요

라고 말하며 왜 아내를 부모님께 빨리 소개했는지 말한다. 이 말은 잭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후 생방송 당일 날 매기가 사람들 앞에서 계약 연애를 고백하는 장면은 폭탄 선언과 같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 매기가 잭을 좋아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그들 관계의 세 번째이자 가장 큰 터닝포인트는 바로 잭의 변화이다. 그가 고등학생 때 쓰다 만 자작곡을 완성해서 매기에게 불러주는 장면은 두 사람이 비로소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고등학교 프롬 시절 서로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원데이>는 새드 엔딩이었지만 닫힌 해피엔딩의 잭과 매기는 <빨간 머리 앤>의 앤과 길버트 커플을 떠오르게 한다. 잭과 매기가 비로소 오랜 감정을 터놓고, 특히 잭이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두 사람이 이어지는 것은 관객들에게 훈훈함을 준다. 절친 로맨스와 관련된 여러 영화들 중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므로 추천드린다.



스포일러와 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확인해주세요 ^^


매기와 잭의 로맨스 번외편으로 매기의 아버지가 매기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옥상에 올라가서 널 사랑해 라고 외칠 사람을 만나라

는 말은 부모님, 특히 아버지들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해주고픈 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시청자들한테도 의미 있는 대사인 것 같다.  딸, 아들 너나할 것 없이 우리는 자신에게 소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최우선시해주고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 말처럼 매기와 잭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랑이 되는데, 엔딩씬에서 잭이 매기한테 매기 어머니 반지를 갖고 프러포즈할 때에도 코믹함은 여전하다. 남은 평생 동안 너와 썰매를 타고 싶어, 라는 고백은 어느 로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고백인 것 같다. 꽉 닫힌 해피엔딩의 절친 우정 로맨틱 코미디로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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