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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Aug 16. 2020

오래된 필름 같은 작품, 《카모메 식당》

핀란드 식당의 간결한 요리가 보여주는 삶

《세상에서 가장 담백한 영화 요리》는 19개의 메뉴를 선보인다. 그중 첫 번째 애피타이저는 《카모메 식당》이다. 요리를 주제로 한 작품이기에 우리의 콘셉트와도 가장 잘 맞닿아 있는 전채 요리이다. '요리를 통한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천천히 음미해 보길 바란다.



 한 편의 영화에서 음식은 '삶'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다. 음식점에는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카모메 식당》, 《심야식당》, 《식객》처럼 많은 영화들에서 요리와 음식이 주된 소재로 사용되었다.


 식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레스토랑의 주인은 하루에 수십 명의 손님들을 맞이하며 각양각색의 삶을 본다. 특히 타지에 음식점을 차리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핀란드 헬싱키에 문을 연 '카모메 식당'에도 수많은 손님들이 인생 보따리를 안고 찾아왔다.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 ㅣ 네이버 영화


 카모메 식당은 큰 특징이 없는 음식점이다. 가게도 길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고 영업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손님들이 없다. 하지만 카모메 식당의 주인 '사치에'는 늘 밝은 표정으로 일을 한다. 손님 한 명 없는 식당에 가끔 어린 청년들이 찾아오면 무료로 커피를 주기도 한다. 월세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여유로운 사치에의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힘든데 숨기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 일 없는 듯한 그녀의 표정은 항상 밝다.

 사치에의 캐릭터 설정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보는 사람에게 믿음을 준다. 이번 영화 요리에 깊이 빠질수록 카모메 식당에 계속 손님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영화를 맛보는 사람들은 사치에라는 사람의 장점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끝없는 밝음, 밤마다 하는 무릎 요가로 다진 강인한 내면, 그리고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조건 없이 베푸는 인심. 카모메 식당이 손님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이유이다. 


 사치에는 카모메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줄 수 있는 것을 다 준다. 첫 번째 손님은 핀란드의 '토미'였다. 사연이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토미는 처음 보는 사치에에게 한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대뜸 물어본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하며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매일 식당에 찾아온다. 토미는 음식값을 낼 돈이 충분하지 않아 매번 공짜로 커피를 얻어 마시는 데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치에와 토미뿐 아니라 카모메 식당에 찾아오는 모든 캐릭터들이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오래된 필름이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용히 있다가도 갑자기 맥락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정적으로 상황을 이어가다 리액션을 한다. 그 반응도 화려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불빛 같다. 캐릭터들이 모두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니 작품의 풍미가 일관적이다. 영화는 끊기었다가 조용히 다시 틀어지는 필름 같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 ㅣ 네이버 영화


 토미 다음으로 카모메 식당에 크게 세 명의 손님들이 더 찾아오는데 첫 번째는 '미도리'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이 인상적인 미도리는 사치에와 만나는 순간부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다. 둘은 식당이 아닌 다른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다. 사치에는 토미가 일전에 물어본 주제가의 후렴구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카페에서 '무민'을 읽고 있는 미도리를 방문하고 그녀에게 노래 가사를 물어본다. 이 장면은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씬인데,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카페에서 큰 목소리로 애니메이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적이지만 개성이 있는 작품의 특징이 느껴진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친분을 쌓은 사치에와 미도리는 같은 집에 살게 되고 미도리가 사치에의 식당 일을 돕는다. 행간을 짐작하건대 미도리도 무언가 힘든 일이 있어 핀란드로 여행을 왔다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카모메 식당에서 일을 한 것 같다. 어쨌든 미도리는 사치에와 달리 카모메 식당이 적자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미도리 ㅣ 네이버 영화


 그녀의 노력에도 카모메 식당은 한 가지 메뉴만을 고집한다. 바로 '오니기리'이다. 사치에는 화려한 요리 대신 주먹밥인 오니기리를 만들어 팔 것을 주장한다. 심플한 메뉴이지만 그것을 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카모메 식당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는 것. 이것이 주방장 사치에의 가치관이었다. 여기서 영화 요리《카모메 식당》의 맛이 한 줄로 요약된다. '심플함.' 'Simple is the best'라고 말하듯이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것이 최선의 것이다'는 교훈이 깊은 맛으로 느껴진다. 


《카모메 식당》이라는 작품 자체도 큰 사건이 벌어지거나 다채로운 영상미가 펼쳐지지 않는다. 핀란드를 배경으로 시장, 가게, 거리의 일상적 풍경들이 펼쳐지고 주인공들은 평범하게 삶을 살아간다. 작품은 아무 일 없는 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교훈 없이 간결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러한 간결함이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며 화려한 영상미와 블록버스터급 플롯에 지친 관객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선물한다. 《카모메 식당》이 기타 영화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아직까지도 많은 관객들이 기억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오니기리와 고등어 구이가 2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전달하는 휴식은 놀랍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작품. 정말 오래된 필름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카모메 식당의 요리 ㅣ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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