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가 있는 밤 Aug 17. 2020

덤덤해서 따뜻한 《심야식당》

밤에만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남긴 위로

관계에도 온도가 있듯이 음식의 맛에도 온도가 있다. 어떤 요리는 차갑고 어떤 것에서는 따뜻한 맛이 느껴진다. 《카모메 식당》의 뒤를 이은 애피타이저 《심야식당》은 따뜻한 맛을 가진 요리이다. 낮에 문을 여는 '카모메 식당'과 달리 밤에만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덤덤함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자. 《심야식당》의 깊은 풍미에 마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요리에 대한 영화 중에서도《심야식당》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밤에만 여는 식당'이라는 콘셉트도 독특했지만 무엇보다도 작품 특유의 덤덤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야식당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여는 식당이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요리 영화들보다도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시간대에 식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기에 식당에 가면 매일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심야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 ㅣ 네이버 영화


 1편과 2편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모두 같은 구조를 취한다. 식당의 셰프이자 주인장 '마스터'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수미상관 구조인데《심야식당》 의 팬이었던 사람들은 2편도 1편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것에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심야식당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길모퉁이에 작게 위치한 음식점의 주 메뉴는 하나,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이다. 다소 생소한 음식이지만 이것을 찾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 외에도 손님들이 시키는 메뉴는 천차만별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풍기는 '무뚝뚝한 따뜻함'은 마스터의 요리에서도 느껴진다. 마스터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만들어 준다. 주문하면 무엇이든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이렇게 능력 있는 마스터와 그의 맛있는 요리가 있기에 심야식당 사람들은 늘 같은 곳을 찾는다. 


순서대로 나폴리탄, 마밥, 그리고 카레 ㅣ 네이버 영화

 

 우리의 담백한 영화 요리에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쉬, 디저트가 있듯,《심야식당》1편도 3가지 요리를 챕터로 하여 전개된다. 첫 번째는 '나폴리탄, ' 두 번째는 '마 밥, ' 세 번째는 '카레라이스'이다. 나폴리탄은 이탈리안 파스타와 비슷한데 면을 돌돌 말아서 접시 한쪽에 길게 놓고 먹는 것이 특징이다. 기호에 따라 새우를 넣어 로제 파스타처럼 먹을 수 있고 토마토소스에 소시지를 곁들여 먹을 수도 있다. 마 밥은 말 그대로 걸쭉한 맛의 마를 밥에 얹어 먹는 일품요리이다.


 이 요리들이 차례대로 챕터의 제목이 되어 주요 인물 3명의 사연을 가져온다. 인물들은 사랑, 은혜와 보답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그중 두 번째 주인공인 '미치루'가 기억에 남는다. 미치루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청년인데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땅한 거처도 없던 그녀는 심야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비판했지만 마스터는 미치루가 무슨 사연이 있었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 후 미치루가 직접 마스터에게 사과를 하러 오고, 그 후부터 그녀도 요리의 길로 들어선다. 

 

《심야식당》의 특성상 두 번째 캐릭터의 이야기가 가장 길기 때문에 미치루의 이야기는 긴 흐름으로 전달된다. 한 청년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식당 주인은 그를 용서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청년은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는다. 이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지기에 미치루는 1편에서 핵심적인 인물이다. 

 

미치루 ㅣ 네이버 영화


《심야식당》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잔잔한 작품으로 남은 이유는 미치루처럼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인생의 깊은 가치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심야식당》시리즈는 관계에 대해 많이 말하는데, 천천히 흐르는 만남으로 관계에 깊이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각 챕터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 모든 내용들이 깊이 있게 다루어지기에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심야식당》의 내용이 이처럼 빛나는 이유에는 내용뿐 아니라 '마스터'의 존재도 크게 기여한다. 그의 덤덤함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로도 연결된다. 마스터는 영화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에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밤에 자신의 식당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으면 마스터는 그저 조용히 듣는다.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라 했던가. 마스터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새로운 여자와 남자가 식당에 와서 연인이 되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도 마스터는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마스터의 경청과 바라봄만으로도 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원상 복구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래서 관객들도 매일 밤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처럼 다음 편이 궁금해지고 계속 마스터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진다. 그중에는 마스터에게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마스터의 존재는 영화 안팎으로 사람들에게 가공되지 않은 따뜻함을 준다. 


심야식당의 주인 ㅣ 네이버 영화


 1편과 2편 모두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큰 틀은 비슷하다. 요리만큼 삶을 잘 보여주는 소재가 없기에 《심야식당》은 등장인물들이 먹는 음식을 통해 기쁘고 안타까우며 또 희망찬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2편이 끝난 것이 아쉬운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준 교훈을 생각해보며 《심야식당》에 나오는 요리 한 그릇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도 영화를 본 가치는 충분하다. 

 



이전 03화 오래된 필름 같은 작품, 《카모메 식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