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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Sep 01. 2024

[전쟁 영화] 잊어서는 안 될 그 시절의 기억

영화 <청춘의 증언>

이번 무비 풀코스에서는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 그리고 한 편의 소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을 써내려간 작품을 함께 살펴보아요


1. 청춘의 증언

첫 번째 작품은 티빙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청춘의 증언>이다. 실제로 역대 전쟁 회고록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평가받는 책 <Testament of Youth>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 배우

왼쪽: 순서대로 태런 에저턴, 알리시아 비칸데르, 킷 해링턴, 콜린 모건 ㅣ 오른쪽: 순서대로 조나단 베일리, 헤일리 앳웰

실존인물이기도 한 주인공 '베라 브리튼' 역은 <툼레이더>, <제이슨 본> 등 영화의 주연으로 유명한 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맡았다. 그녀의 극중 연인인 '롤랜드 레이튼' 역은 <왕좌의 게임>의 존 스노우, <이터널스> 출연 등으로 알려진 배우 '킷 해링턴'이 연기했다. 베라의 남동생 '에드워드 브리튼'은 <후드>와 <킹스맨>으로 가장 잘 알려진 '태런 에저턴'이 소화했고, 베라의 친한 친구인 '빅터 리차드슨'은 <마법사 멀린>으로 인지도가 높은 '콜린 모건' 배우가 맡았다. 이 네 명이 극중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제 1차 세계대전을 통과하며 심적 변화를 겪는 베라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이 네 명 외에도 <브리저튼>의 '앤서니' 자작으로 인기를 얻은 배우 '조나단 베일리'가 에드워드의 군인 친구인 '제프리 텔로우' 역을 맡았고, <에이전트 카터>와 마블 시리즈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연인인 '페기 카터'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 '헤일리 앳웰'도 '호프'라는 이름의 간호사로 잠깐 등장한다.


전쟁 장면이 없는 전쟁 영화

롤랜드와 베라 ㅣ 출처: IMDB

<청춘의 증언>은 말 그대로 여성으로서 전쟁통을 지나가며 겪어낸 사건들에 대한 베라 브리튼의 회고록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영화의 첫 장면인 1918년 휴전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수미상관 구조로 등장하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과거 회상 형식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이다. 한편 원작 회고록은 1900년부터 1925년까지를 폭넓게 다뤘다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 장면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덩케르크>나 <1917>도 전쟁의 폭력이 직접 노출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청춘의 증언>도 참호에서의 싸움이나 전투의 직접적 모습들은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을 모두 전쟁터로 내보낸 여성이 간호사로서 고군분투하며 전쟁의 실상을 목격하는 스토리가 영화의 중후반부터 펼쳐진다. 더불어 영화가 실제 자서전을 배경으로 한 점, 그리고 전쟁을 겪어나간 여성의 시선에서 전개된 점이 다른 전쟁 영화들과의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 느낌이 물씬 나는 초반부

옥스포드에 간 베라 ㅣ 유튜브

영화는 초반부와 중후반부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데, 우선 초반부에는 일반적인 제인 오스틴 작품에서 볼 법한 스토리가 등장한다. 주인공 베라는 보수적인 영국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지만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똑똑한 여성이다. 그녀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가 있다. 아버지 '토머스 브리튼'이 그녀에게 피아노를 사줬지만 베라는 이 돈으로 옥스포드 1년 학비를 댈 수 있다며 화를 낸다. 이 장면을 보면 제인 오스틴 영화의 주인공들이나 <브리저튼>의 '엘로이즈'와 같은 캐릭터가 연상된다. 당대 여성들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고 학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베라의 학구열은 많은 현실적 한계에 부딪혔다.


특히 집안의 반대 때문에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가정교사를 둘 수 없었던 베라는 옥스포드 소머빌 컬리지의 입학시험을 독학으로 준비하는데, 그 때문에 입학 시험에서 라틴어 에세이를 본다는 사실도 모르고 시험장에 들어가 좌절하는 장면도 그녀의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베라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것은 그녀가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답안을 작성해 임기응변했으며 창의적 시선으로 옥스포드에 입학하는 스토리이다. 이 장면을 보면 베라 브리튼이 실제로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독창적인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옥스포드에서 베라가 승승장구할 것 같지만 영화는 점점 분위기가 바뀐다. 1914년 7월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베라의 동생 에드워드, 연인 롤랜드, 친구 빅터, 에드워드의 친구인 제프리가 모두 군인으로서 입대한 것이다. 특히 베라는 에드워드가 전쟁에 자원하는 것을 허락하도록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후회로 남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네 명의 친구들 모두가 전쟁터로 간 후 허탈함과 불안함과 싸워야 했던 베라의 이야기는 전쟁터에 가족을 보낸 당대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전쟁의 상실을 목격한 후반부

출처: 가디언

결국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베라는 가족과 친구들 곁에 가기 위해 옥스포드에서의 학업을 포기하고 영국과 대영 제국 군인들을 간호하는 민간 부대였던 'VAD(Voluntary Aid Detachment'의 간호사로 자원하면서 런던, 몰타, 프랑스 일대를 돌며 상이군인을 돌본다. 이처럼 초반부와 중후반부 극의 변화가 매우 대비적이다. 또한 베라가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옥스포드를 여성으로서 힘겹게 들어갔는데도 학업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면 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변 앞에서는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당대 사람들의 절박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제로 베라 브리튼은 동생 에드워드, 연인 롤랜드, 친구인 빅터와 제프리를 모두 전쟁에서 잃었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 네 명 모두 전사했으며 이것은 베라 브리튼의 회고록에서 드러나 있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소개된다. 원작을 몰랐던 관객으로서는 네 명 모두의 전사가 상당히 충격적이다. 동시에 당시 세계 1차 대전은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기도 하기에 무력 앞에서 꺾였던 실제 청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먹먹하게 느껴진다.


롤랜드 ㅣ 트위터

또한 영화에서 네 명의 인물들이 전사하는 방식이나 시기도 실제 회고록의 내용과 유사하다. 크리스마스에 약혼을 앞두고 있던 베라가 결혼 직전에 롤랜드의 전사 소식을 듣는 것, 간호사로서 베라가 동생 에드워드를 한 번 살렸지만 결국 이탈리아 전투에서 동생이 전사한 것, 에드워드와 연인이었던 제프리도 전사하고 베라의 친구인 빅터도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갑작스러운 머리 부상으로 사망하는 스토리 모두 영화에서 비중 있게 드러난다. 특히 롤랜드가 야밤에 철조망을 수리하다가 독일 저격수에게 전사한 점, 베라가 롤랜드의 전사 소식을 크리스마스 직전에 전화로 통보받은 스토리는 실제 베라가 겪었던 사건과 일치한다. 롤랜드의 휴가를 기다리다 결국 그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은 베라의 허탈함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에게도 전달된다.


에드워드와 제프리 ㅣ 구글

더불어 에드워드가 중상을 입은 1916년 프랑스 솜 전투는 실제로 영국군에서 57,000명의 사망자를 낸 대규모 전투였다. 그리고 극중 에드워드가 제프리와 연인관계처럼 암묵적으로 묘사된 스토리 또한 어느 정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당대 LGBQT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베라 브리튼은 에드워드의 성적 지향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베라는 회고록에서 '에드워드가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모호하게 묘사하였다.


 또한 베라 브리튼의 전기를 쓴 작가 '마크 보스트리지'에 따르면 당시 에드워드는 여러 남성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이 사실을 상관인 찰스 허드슨 대령에게 들켰다고 한다. 이 사실이 발각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에드워드가 사망한 점, 그리고 1918년 6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오스트리아군에 대한 공격에서 전사한 유일한 장교가 에드워드라는 점은 에드워드가 일부러 적군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


다만 회고록과 영화는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베라가 실제로는 에드워드를 구한 적이 없다는 것, 전후 베라의 남편이 된 조지 캐틀린이 극중에서는 롤랜드를 끝까지 보살핀 군인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두 군인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들은 있지만 궁극적으로 베라가 겪어야 했던 허탈감은 사실이었다.


'청춘의 증언'

실제 베라 브리튼의 딸과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 ㅣ the telegraph

전후에도 베라의 트라우마는 계속된다. 베라는 스스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청춘의 증언>을 집필했다. 네 명의 연인과 친구를 모두 잃은 베라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 명의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잊지 않겠다는 것은 너희들에 대한 약속이야,'라고 독백하는 베라의 내레이션은 실제 베라 브리튼이 저자로서 회고록을 써내려간 목적과 일치한다. <청춘의 증언>이라는 제목답게 베라는 그 당시 전쟁을 겪으며 희생되어야 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글로 남겨 영원히 기록물의 형태로 남도록 한 것이다.


이외에도 <청춘의 증언>은 실제 베라의 삶과 궤적을 같이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베라는 여전히 상실로 인해 힘들어 하는데, 이때 옥스포드에서 그녀의 스터디 메이트인 '위니프레드'가 베라를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위니프레드는 베라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운 친구이자 성공한 저널리스트였다. 그리고 베라는 1918년 11월 휴전 협정 체결 이후 적극적인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며 평생을 살았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묘사되는데, "아마도 그들의 죽음은 우리가 지금 함께 서서 아니오라고 말할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살인에 아니오, 전쟁에 아니오, 끝없는 복수의 순환에 아니오,'라고 외치는 베라의 모습은 그녀가 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반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즉 전쟁과 무력은 끊임없는 복수와 싸움을 낳기 때문에 베라는 애시당초 폭력 자체에 반대해야만 무고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더불어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는 에드워드를 잃은 슬픔에 자결했고 그녀의 친구 위니프레드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기에 베라는 끊임없이 상실을 마주하며 전쟁의 트라우마와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한 그녀의 생애가 <청춘의 증언> 회고록에 담겨 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으며, 영화화된 <청춘의 증언>은 회고록을 읽지 않은 수많은 관객들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명작이다.



참조한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3/mar/24/vera-brittain-testament-of-youth

https://en.m.wikipedia.org/wiki/Testament_of_Youth

https://en.wikipedia.org/wiki/Testament_of_Youth_(film)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ko/article/world-war-i

https://www.biggaypictureshow.com/bgps/2015/01/gay-secrets-behind-testament-youth-may-led-tragic-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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