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히어로물의 지평을 연 블랙 아담
<블랙 아담>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히어로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한 영화이다.
히어로물도 단순하게 영웅과 악당, 선과 악, 흑과 백, 이렇게 이분법만으로 구분될 수 없다. 그레이맨처럼 양쪽 끝 어디에도 소속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블랙 아담으로 거듭나는 '칸다크'의 테스 아담도 마찬가지이다.
<블랙 아담>은 영웅들은 반드시 착한 일만 하고 사람들을 살린다는 편견을 부순다. 그 예로 영화 예고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카림'('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일원, 초능력자)이 블랙 아담에게 "Heroes don’t kill people"이라고 말하자 블랙 아담이 "Well, I do"라고 답 하는 장면이었다. 작품 속 초능력자 공동체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인터갱'과 같이 '칸다크'를 위협하는 악당들도 살리려 애쓴다. 하지만 블랙 아담은 칸다크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터갱 일당을 가차없이 처리 한다. 이전까지 다른 히어로물에서 영웅들이 살생을 하지 않은 모습과 확연히 대비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블랙 아담의 캐릭터 설정은 오히려 히어로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의적 홍길동처럼 블랙 아담은 칸다크라는 공동체 하나만을 바라 보고 그 위협이 되는 사람들은 제거하는데, 이것은 DC코믹스가 새로 만든 다크 히어로물의 새로운 예시이다. 극중 칸다크의 자유를 누구보다 갈망하고 악마의 왕관인 '사박 왕관'을 발견한 고고학자 '아드리아나'가 한 말처럼, 칸다크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아니라 인터갱을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아줄 영웅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영웅이 다크한지 또는 화이트한지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과거 27년 동안 칸다크가 인터갱의 지배를 받을 동안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칸다크에 도움을 주지 않다가, 이제 블랙 아담이 나타나니 그를 저지하려는 그들의 행위는 칸다크 사람들에게 달가울 리 없다. 그런 점에서 <블랙 아담>은 실제로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착한 영웅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서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영웅이라는 것을 새롭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번 영화는 영웅의 동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 한다. 다른 히어로물에서 영웅들은 커다란 대의를 가지고 있고 날 때부터 영웅으로 태어나지만, 사실 히어로는 '본투비영웅'이 아니라 누군가의 뜻을 이어받아 탄생할 수도 있다. 테스 아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스스로를 영웅이라 생각하지 않고, 영웅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는 과거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웅이 되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평론을 위해 꼭 필요해서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의 반전 중 하나로서 초반부 칸다크의 기원전 역사에서 6명의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초능력과 '샤잠'이라는 주문을 통해 한 소년을 칸다크의 1대 영웅으로 만들었는데, 그 소년은 드웨인 존슨 배우가 연기한 테스 아담이 아니라 그의 아들 '후루트'였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테스 아담이 오 영화 초반부터 스스로를 영웅이라 여기지 않고 다크 히어로의 면모를 보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후루트가 영웅이 된 후 칸다크의 타락한 왕조가 그를 추격하자 후루트는 아버지인 테스에게 '샤잠'이라는 주문을 외쳐 마법사들에게 받은 힘을 양도했고, 그렇게 테스 아담은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블랙 아담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이 부분은 블랙 아담만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블랙 아담은 대의를 갖고 영웅이 되길 선택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위해 영웅이 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블랙 아담>은 영웅이라면 반드시 자신만의 뜻이 있고 태어나서부터 영웅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작품이다.
궁극적으로 블랙 아담은 영웅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통해 히어로물의 스테레오타입을 정면 돌파한다. 칸다크 사람들에게는 hero가 아니라 freedom이 필요하다는 테스 아담의 아들 후루트의 말도 일맥상통한다. 블랙 아담이 영화에서 자신은 히어로가 아니라 수호자라고 말하고, 영화 후반부에서 칸다크의 왕좌를 부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 자체보다도 그가 가져다줄 수 있는 자유이고, 더 나아가서 그 자유를 오랫동안 지켜줄 수 있는 보호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영웅의 도움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 중 리더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아드리아나의 아들 '아몬'이 바로 그 리더이다. 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아드리아나와 가족을 지킨다. 또한 블랙 아담이 영화 후반부에서 사박 왕관을 쓴 악마의 후계자, 칸다크 왕조의 후손과 싸울 때에 아몬이 칸다크의 자유를 위해 시민들을 일깨운다. 마치 마블의 와칸다의 전사들처럼 칸다크 사람들이 자유를 외치며 사박 악마에게 달려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영화 <블랙 아담>은 사람들이 영웅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일어서는 것이 히어로물의 궁극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마블과의 차이점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블랙 아담>은 MCU 작품들과 비슷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카림은 팔콘과 아이언맨을 합친 듯하고, 예지력을 지니고 디멘션을 조정하며 환상을 만들고 몸을 복제하는 '닥터 켄트 페이트'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틸다 스윈튼이 맡은 '디 에인션트 원'과 비슷하다. 몸이 커지는 '스매셔' 또한 몸의 분자구조를 조정하고 양자역학을 사용하는 앤트맨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의 초능력이 마블과 유사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역할은 DC만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사이클론은 몸속에 나노봇이 주입된 이후 토네이도를 만드는 초능력자인데, 그녀가 여성 히어로라는 점, 그리고 형형색색의 칼라와 독특한 코스튬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강화한 점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희생하지 않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달리 닥터 페이트가 최종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해 예지된 결과를 바꾸려 노력한 점도 마블과 다르다.
이처럼 <블랙 아담>은 MCU 작품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평점이 낮은 것에 비해 DC가 생각하는 새로운 히어로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히어로물들과 다른 점이 참신하고, DC COMICS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