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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가 있는 밤 Aug 18. 2020

용기와 우정이 이루어내는 마법, 《청바지 돌려 입기》

마법의 청바지를 입은 4명의 소녀들이 인생을 이야기하다

7살 정도의 나이부터 'Anne'이라는 이름으로 성장기를 풍성하게 보낸 《빨간 머리 앤》을 보았다. 이제 유년기 때부터 서로의 곁에서 힘이 되어준 네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꼬꼬마였던 어린 시절부터 멋진 10대가 되기까지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그들. 소녀들은 사랑에 대한 용기를, 치열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와 우정을,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의지를 배웠다. 이번 영화 요리《청바지 돌려 입기》를 통해 4인방의 인생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느껴보자. 



 '옴니버스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한 영화 안에 여러 작품이 들어 있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청바지 돌려 입기》도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4인방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한 가지 공통적 주제로 묶인다. '인생의 여러 고민.' 네 명의 소녀들이 보낸 치열한 여름으로 초대한다.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주인공들은 크게 4명, 여고생인 '레나, 브리짓, 티비, 그리고 카르멘'이다. 살아온 배경과 가정환경은 모두 다르지만 어렸을 적부터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해온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나이가 어리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큰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레나는 자신을 돌봐줄 부모님이 없고 브리짓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티비는 날카로운 말들을 쏘아붙이며 세상에 비판적인 캐릭터이다. 그래서 그녀 주변에는 레나, 브리짓, 카르멘을 제외하고 진정한 친구가 없다. 카르멘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카르멘, 티비, 레나 그리고 브리짓 ㅣ 네이버 영화


 일전에 하이틴 드라마《상속자들》에서도 모든 주인공들이 나름의 상처가 있던 캐릭터였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요리《청바지 돌려 입기》에서도 10대 주인공들이 가족, 인간관계, 그리고 사랑을 둘러싼 상처를 품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네 명이 처음으로 떨어져 보내는 여름방학에서 시작한다. 이는 그들에게 매우 큰 일인데 4인방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여러 일화들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먼저 어렸을 적 카르멘의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불화로 가정을 떠났을 때 친구들은 카르멘과 밤새 통화하며 그녀를 위로하였다. 또 브리짓이 어머니를 잃었을 때 친구들은 강한 척하는 여린 아이를 보듬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버팀목이 되어주었기에 4인방은 서로를 누구보다도 아꼈다.


 그래서 각자 여름의 여행지로 떠나기 전 4명의 소녀들은 약속을 한다. '우정 템'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아이템은 우정링이나 팔찌 등이 아니라 '청바지'였다. 4명이 함께 쇼핑을 하다가 체형이 다른 모두에게 맞는 청바지를 발견한 것이다. 마법의 청바지였던 셈인데, 영화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됨으로써 4인방의 우정이 더욱 빛난다. 


'청바지 돌려 입기' ㅣ 네이버 영화


 4명의 소녀들은 공유 일기를 쓰며 청바지를 돌려 입는다. '청바지 돌려 입기.' 그들의 여름방학 숙제인 셈이다. 한 명이 청바지를 입고 벌어진 일들을 일기장에 기록하면 다음 친구가 물려받아 또 일기를 채우고. 그렇게 그들만의 추억이 하나씩 쌓인다. 


 일기장을 채우는 동안 4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일들을 겪는다. 각기 다른 고민을 전달하기에 옴니버스적이고 영화에 풍성함이 생긴다. 레나와 브리짓은 사랑에 대해, 티비는 친구에 대해, 그리고 카르멘은 어그러졌던 부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먼저 레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녀를 엄격히 보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 스스로 연인을 찾아나갈 용기가 부족했다. 그런 그녀 앞에 한 어부 청년이 나타난다. 레나가 도망가도 그는 레나에게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속 말해준다. 그때도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녀를 청년이 했던 한 마디가 돌아 세운다. '나는 너를 계속 알아가려 하고 있잖아, 모르겠어?' 그 말을 들은 레나는 비로소 사랑에 용기를 낸다. 


어부 청년을 만난 레나 ㅣ 네이버 영화

 

 반대로 브리짓은 사랑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녀는 저돌적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인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브리짓처럼 빨리 달려가는 사랑에는 부작용이 있다. 잠시 느낀 설렘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 


 브리짓이 사랑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인생에 조언을 해주고 그녀를 아껴줄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찾아온 사랑에 설레지만, 서툰 사랑보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청바지 돌려 입기》에서 4명의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펼쳐지지만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자의 갈등이 해소될 때마다 그들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다. 


브리짓 ㅣ 네이버 영화


  여름 동안 사랑에 설렌 레나와 브리짓과 달리 티비는 여전히 염세적인 소녀였다. 어렸을 때부터 비판적이고 냉철했던 티비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취재한다. 나머지 3명의 친구들이 여행을 갈 동안 그녀는 혼자 마을에 남았다. 그렇게 차가웠던 티비의 마음을 열어준 아이가 한 명 등장한다. 그 아이는 티비와 달리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이 있었고 세상을 좋게 바라보았다. 티비와 반대인 아이가 그녀와 친해질 것이라 생각되지 않지만 티비는 점점 아이의 영향으로 변화한다. 


 티비의 여름은 '나이 불문하고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성가신 일들을 겪는 티비의 방학은 로맨틱하거나 멋지지 않다. 하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운 티비의 방학은 그녀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카르멘 ㅣ 네이버 포토


 마지막으로 카르멘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졌다. 아버지가 새로 결혼한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딸들을 더 사랑하는 듯 보이고 그것은 카르멘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의 재혼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던 카르멘은 아버지의 새로운 가족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그간 참았던 설움을 터뜨린다. 딸의 서러움을 알게 된 아버지는 결혼식장에 카르멘을 앞으로 불러내고 오래 쌓은 오해를 푼다.  

 

 카르멘의 옴니버스 영화도 더운 여름 동안 그녀의 변화를 따뜻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마음에 쌓인 상처를 치유하고 부녀 간의 가족애를 다시 느끼는 것. 카르멘의 방학도 다른 세 사람만큼 의미가 있는 이유이다.


4인방의 모습 ㅣ 네이버 영화


 이처럼 4명의 소녀들이 가진 고민은 10대의 일반적 고민보다 훨씬 깊다. 사랑에 대한 용기, 어머니 없이 홀로 강인하게 커야 했던 아이의 외로움,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친구관계, 그리고 아버지가 딸을 아끼는 마음. 인생의 여러 단면을 차례차례 보여주면서도 소녀들은 마법의 청바지를 입고 삶의 중요한 것을 배운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마법의 청바지가 아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마주했기에 스스로 인생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앞으로 가기 힘들 때에는 곁에 친구들이 있어주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준 응원과 지지가 4명 모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현실에 마법의 청바지가 없다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 없이도 자신의 고민을 마주하고 홀로 서기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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