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리산

언젠가는 그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by 오션

"와. 여기 진짜 공기가 좋고 살기 딱 좋다. 이런 데서 일하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나를 보러 온 엄마가 항상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응 이라고 대답을 하긴 했지만, 여기는 영화관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친구들도 없어. 심심하단 말이야. 항상 내 마음속에 가득한 말이었다.

나는 언제쯤 서울로 발령을 받을 수 있을까? 26살의 나는 서울이 항상 그리웠다.


취업을 준비했던 대학 4학년. 나는 학교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들었다.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쓰고, 면접은 어떻게 보는지 등등 나름의 노하우를 전문 강사분께서 설명해주셨다.

열심히 강의를 받아 적은 나는 처음에는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이 회사에 들어가겠어?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해 괜찮아. 괜찮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원서를 썼는지 기억에 안 날 정도로 입사 지원서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몇몇 회사의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나는 한 기관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지원서에는 강사분의 강의대로 근무 희망 지역에 ‘전국’이라고 당당하게 작성하고, 기관 홈페이지와 기관에 대한 여러 신문기사를 찾아본 후 나름의 대책까지 마련하여 면접에 임했었다.

합격 소식을 받은 후 일주일 정도의 신입사원 교육의 마지막 날 나는 나의 발령지를 듣고 입사를 포기할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지리산으로 발령받게 된 것이다.


지리산. 산이라고는 동네 뒷산에 올라본 것이 전부였던 내가 처음 근무하게 된 곳.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나의 사무실이 진짜 촌구석(?)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과 어디론가 여행을 가다가 지나치는 면소재지가 있는 그런 곳. 기억 속의 그런 공간에 내가 실제로 ‘살게’ 되었다.

관사에서 사무실까지는 큰길로 걸어서 15분 정도, 해가 지면 깜깜해서 걸어가기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버스를 타기에는.... 버스가 없었다.

퇴근 후 여가를 즐길만한 곳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곳뿐이고 자기 계발을 위해 운동이며 영어 공부며 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곳. 그렇게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근무를 했었다.


지금은 떠나온 곳이지만,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래도 따뜻한 느낌이 먼저 든다.

멀리서 온 서울 아가씨가 행여 불편하지는 않을까 오며 가며 챙겨주던 주사님.

커피를 사러 간 구멍가게 아저씨의 친절한 웃음.

식당 아주머니의 진한 손맛과 객지 생활 힘들다며 밥 많이 먹으라던 그 푸근하고 두툼한 손길.

벌써 십수 년이 흘렀지만 그것 만은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여자 주인공의 외모에 감탄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나의 지리산이 떠올랐다.

밀려드는 차량과 등산객으로 혀를 내두르고, 말도 안 되는 민원 전화에 시달렸던 곳. 평소에는 너무나 조용해서 그 적막함을 견딜 수 없었던 곳.

무엇보다 서울에서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앉아있는 나, 버스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경관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 같았고, 그 안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도시에서 일터로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푸근하고 조용해진다. 그것이 20대의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은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가끔 내가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본다.

후회도 미련도 아닌, 내 선택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늦게 지리산에 가게 되었다면, 우리 엄마 말처럼 산 좋고 물 좋은 경치에 반해 지금까지도 살고 있었을까...?

그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지리산에 간 적이 없다. 언젠가는 나도 지리산에 가게 될까?

그때는 20대의 내 감정은 지우고, 산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곳을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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