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상일지

립반윙클의 신부

by 사막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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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나나미는 장바구니에 물건을 골라 넣듯 손쉽게 사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인터넷 공간을 선택한다.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같은 수단으로 골라졌을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걱정한다.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나나미의 불안과 걱정을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나 자신에 흠칫 놀랐다.


어쩐지, 자랑삼아 말하기 어려운 첫 대면은 상식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은밀스러운 사적인 영역 안에서는 빈번하게 교류되고 있는 것이 인터넷에서 시작된 현실적 대인관계들이었다.


사람들은 주변의 인연들에게 공평하고 성심 있게 마음을 쓸 것처럼 약속을 하고 생색을 내지만

실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만났었는지 시작점의 구성에 따라 줄을 세워두기도 한다.


금방 치워버려도 되는 분류 점에 속해지기도 하다가,

잔인하게도 나 역시 매한가지 생각으로 사람을 정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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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외로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항구와 같다.


닮아있는 사람, 호감 가는 사람, 정이 가는 사람 등등에 닻을 내려 이어져 있길 원하지만

그 닻은 부유하는 마음을 매어줄 만큼 단단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그렇다면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는 관계의 기반은 특별히 다를까?


닻의 무게 정도가 달라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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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미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다.


결혼 준비기간 동안 약간의'흠'을 가리기 위해 포장한 대응책들이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된다.


버진로드를 끝내고 함께 들어선 생활의 길 앞에서 여느 부부처럼 다정하게 지낼 순 없었을 걸까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원대하리라 하는 어느 구절의 비장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부는 겹쳐 있지 않았던 시간만큼 더 배로 진솔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쏟을 필요는 있었다.


남편의 외도를, 자신의 SNS에 남겨진 뜬소문에 휘둘리기에 앞서 당사자에게 물어봤어야 했고,

몇 줄의 마음을 적어 익명의 누군가에게 공감의 손길을 받기에 앞서, 눈을 보고 대화하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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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나나미라는 여자에게 시시때때로 '어려워진 사람들'이라는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나의 비굴함을 겹쳐 보이게 했다.


나는 주로 들어주는 사람의 자세에 익숙해져 있었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은 할 수 없는지 싫어하는지 등에 대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잘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이 어쩐지 부담스럽고,

갑자기 주목된 이목은 까슬거려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나나미와 그런 내가 어쩌다 읽게 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불특정 사람의 시선들이 스치는 인터넷 공간으로 울고 웃는 글을 배설하고 나서야

가장 안정적인 나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이 든다.


딱 거기까지가 좋은 것이다.


나는 그랬고,

나나미의 네트워크 세상은 현실과 끊어질 듯,

무너지고(남편) 다시 연결되고(유키 마스) 이어지고 있었다.(마시로)


영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

어쩐지 석연치 않은 의심과 기분으로 드글거리는 일회성의 인연의 가중치를 저울질하고 있다가

립반윙클의 신부(마시로)가 되어서야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얽매이지 않은 교류의 자유를 얻게된 나나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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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신부였을 적에도 립반윙클의 신부였을 적에도,

현실에서 올라선 관계들은 아니었다.


죽기 전 친구가 필요했던 마시로의 절박함과,

어느 누구의 삶에도 진솔하게 속하지 못했던 나나미의 공허함이 영혼의 퍼즐처럼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사람을 보듬어주고, 서로의 허물을 벗겨줄 용기가 온 오프라인을 넘어선 관계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라면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그린 블랙 이와이 슌지가 아닌, 화이트 이와이 슌지의 작품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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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느끼고 싶다.


새로운 사람과 생을 합쳐가는 과정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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