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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25. 2017

[뮤지컬] 서편제

광림 아트센터


엄마와 뮤지컬 서편제를 보았다.

얼마 전 네이버에서 프레스콜 생중계를 해주었는데 몇 장면을 보다 보니 가볍지 않은 주제와 대사에 이끌려, 생중계 기념 할인 이벤트 또한 있어 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R석 이벤트용 좌석이라 현장에 도착하여 발권 받고 난 후에야 좌석 확인이 가능했다.

G열 35,36번 좌석이었고 약간 측면이긴 했지만 무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모처럼 생색내며 먼 서울까지 엄마를 불렀는데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이면 어쩌나 싶었던 차였다.

9월22일 금요일의 캐스팅은 송화-이소연, 동호-김재범, 유봉-이정열 배우였다.


무대는 중앙 원판이 돌아가는 형태로 길을 떠나는 인물들, 기억과 의식의 흐름 등을 표현하고 있었고 길게 늘어진 하얀 천에 계절의 변화, 배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무대장치와 의상은 특별히 화려하다고 할 순 없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줄거리로 가득 메워진 느낌이었다.

길게 걸린 천에 천천히 번지는 수묵화처럼 담백하고 정갈한 느낌이 무대 전체 이미지였다.

소리의 완성을 위해 제 삶을 바치고도 득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상실감은 숨겨둔 채 송화와 동호에게 모진 아비가 되어야 하는 유봉의 캐릭터에게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선의와 덕을 포장하여 꺼내놓거나 그 명분으로 흑심을 가려두고자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 소리의 경지’에 이르는 명창의 집념은 안쓰러우면서도 길잡이 역할의 사명을 받드는 독한 스승의 비장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숨이 막히고 시대가 원하는 소리를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유봉과 송화의 품을 떠난 동호는 묶인 줄이 없음에도 유봉 곁을 달아나지 못한 어머니와 다르게 이미 달아난 자신은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지 못한다.

소리는 이 세 사람을 한과 살처럼 묶고, 풀고, 얽혀 그 누구도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1부 끝 2부 시작 전 휴식시간 공연장 옥상 야경관람



자신의 눈을 멀게 하고 끝없이 채찍질 하던 아버지 유봉이 떠나갔을 때 목놓아 절규하던 울음엔 몇백가지의 단어가 이어져야 송화의 심정이 정리될까 싶다.

늘 그리워만 하던 동호에게서 숨게 된 것도, 저 살자고 앞길 떠나간 놈이라는 원망도 유봉이 떠난 시점부터가 아니었을까.

송화는 혼자서 수 십일을 울고 소리를 했다.

멀리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송화와 동호의 그 동안의 안부, 넋두리, 모든 것을 소리에 녹여 송화는 창을 하고 동호는 북을 두들기는 모습이 찡했다. 뭉클했다. 아름다웠다. 아니 슬펐다.

서편제의 대부분의 장면은 알맞게 떨어지는 말을 잘 고를 수가 없다.

그게 엄마와 내가 공연장을 나서면서 좋았지? 좋았어. 외엔 먹먹해서 많은 말을 펼쳐 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송화와 동호가 사랑이었을까?

지구상 유일무이하게 서로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는 간절한 연인은 내 욕심에서 보인 시선이고 크게 극 전체를 두고 다시 생각해보면, 동호에게 송화는 어머니이자, 누이이자, 가족의 포근함을 담고 있는 동호의 고향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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