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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28. 2017

나와 너와 우리의 빨간머리앤



요즘 빨강머리앤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로 시작하는 그 고전 애니메이션 말이다.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둘리 편이 아닌 길동 아저씨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면 어른이 된 거라 했는데 서른이 넘어 다시 본 빨강머리 앤 또한 그랬다.

무뚝뚝하고 차갑게만 느껴졌던 마닐라 아주머니가 실은 앤을 각별히 여기고 챙겨주고 신경 써 주었던 행동들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앤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라다 남자아이를 원했던 마닐라 아주머니, 매튜 아저씨(둘은 남매관계)에게 보내졌다.

앤이 남자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고아원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으나 앤을 하녀처럼 부려먹으려는 재 입양처의 여자를 보고 마닐라 아주머니는 자신이 데려와 살기로 한다.

어린 시절 늘 다른 아이를 돌보고 상상력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가혹한 생활에 대해 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마닐라는 앤을 동정하고 가여워 했고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앤은 정말 말이 많다.

그것도 공상,상상,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 말이다.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원래 하던 일을 멈추고 낭만적이지 않다는 둥 낭만 타령만 하고 있으니 썩 호감 가는 아이는 아니라는 게 앤을 다시 본 첫 소감이었다.

고집은 어찌나 센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면 “ 아주머니 저는 지금 온 세상의 절망을 끌어 안은 기분이에요 제발 이런 저에게 설거지나 청소 같은 일상적인 일은 시키지 말아 주세요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 “ 라며 따박 따박 말대꾸를 한다.

얼마나 기가 찰까.


하지만 앤의 성장과정과 결핍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편견 없이 세상에 맞서고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앤은 ‘자신’이라는 우주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누구보다 생생히 깨어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앤의 별난 성격을 차츰차츰 받아들여주고 그 모습 자체가 앤의 사랑스러운 면임을 인정해주는 마닐라 아주머니의 변화도 인상적이었다.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것도 다 자란 것이라 믿었던 어른들이다.

헬륨가스로 빵빵하게 부풀어 어디든 둥둥 떠 있을 것 같은 앤을 차분히 내려 앉혀 주는 건 마닐라 아주머니의 판을 깨는 충고였다. 

앤애게는 그 역할이 가끔씩, 꼭 필요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앤의 어린날의 시작은 혹독했지만 자라는 동안 다이애나 친구 같은 좋은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 관계를 잘 가꾸어 낸 것, 사람들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자신감을 찾게 된 것도 앤의 좋은점이자 능력이었다.

다시 봐서 더없이 반가웠고, 한번 더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모가 난 구석도 있지만 역시 앤은 긍정적이고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그래서 더 정이 가고 살다가 한번씩 옛 친구를 생각하듯 떠올리게 된다.

어린 시절 앤을 보던 내 눈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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