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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an 18. 2018

[전시] 줄리안 오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기획전시실 1,2,4,5 

2017년 9월 28일부터 2018년 1월 21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 줄리안 오피'전을 관람하였다.
내가 다녀간 날은 1월 17일이었고, 곧 마감될 전시 중에 한 번쯤 볼 만한 전시라는 주제의 포스팅을 읽고 찾아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화성행궁 앞마당에 위치한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을 건물 자체로 좋아한다.
우선, 찾아가기 쉽다. 
버스에서 내려 막혀있는 곳 없는 너른 광장에 위치해 있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찾아가기 쉽고, 
건물 안의 구조도 복잡하지 않아 한두 번 방문하면 손바닥 안을 돌아다니듯 쉽게 관람로를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보았다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
12월쯤엔 엄마와 과천 현대미술관을 다녀왔는데, 봐도 봐도 끝없이 이어지는 방대한 전시규모에 체력적으로 먼저 골아 떨어졌다

당시 전시가 '역사를 몸으로 쓰다' 주제로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중심의 미디어 아트들이 많아, 
이를 설명하는 글자도 가득, 한 개의 작업물당 짧으면 5분 내외 길면 20-30분 길이의 영상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모든 작품을 꼼꼼히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었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미술관에 가면 천천히, 오래 보고 나와야 할 것 같은 어떤 사명감(?)이 든다.
어쨌든 날을 골라 발걸음을 했고, 작가와 인고의 산출물인 작품을 만난다는 건 가벼운 만남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 면에서 수원시립미술관은 다소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충만하게 돌아볼 수 있다.


작가 줄리안 오피는 1958년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성장하였다.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들을 길러낸 런던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인물의 특징만을 포착하여 단순화한 초상과 군상 시리즈를 통해 본래의 이미지를 더욱 경쾌하고 친숙하게 만들며 명성을 쌓아왔다.
고전적 인물 초상의 현대적 해석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상 풍경에 조형적 해석을 시도해온 줄리안 오피의 작품세계는 사람에게 가치 중심을 두고 있다.
현대인의 일상을 간결한 형태와 단순한 색으로 응축시켜 재발견하고 단순화한 이미지가 주는 해석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다.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비치 브로슈어에서 발췌)



전시실 입구에는  LED 패널에 걷는 모양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는 조형물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전시실 1은 주로 사람의 얼굴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3D 프린트된 거대 조형물에서부터, 반입체 조형물, 반복되는 영상의 액자 형태 작품 등이 다양한 기법으로 같은 주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과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영혼을 갈아 넣은 극 사실주의의 작품을 보다가, 
현대 팝아트 요소가 강한 작품을 보면 고뇌한 적 없는 쉽게 쓰인 시의 날라리 작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미술이란 몇 날 며칠 밤의 작업시간을 들여 복잡하고 세밀하게 도출된 작품만이 진정한 예술이야라는 기준도 없고, 기준과 틀에 자유의 항기를 들어도 모자를 판국에 역으로 갇힌 사고에 빠져, 쉽게 폄하한다면 현시대와 작품을 결부시켜 읽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몇 년 전 직장 상사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보고서를 자세히 늘려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결국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지만) 한 장으로 축약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엔 콧방귀 뀌었지만, 줄리안 오피 그림 안에 있으니 어쩌면 그 말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그대로 옮겨오는 것보다, 단순화를 향한 생략의 도식화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갖추고, 쉽게 잊히지 않을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면서도 작품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

순수미술과 산업예술 구분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은 '요즘 미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주요 미술관 개인전 - 2017년 포선 파운데이션, 상하이 / 2015년 쿤스트할레 헬싱키, 핀란드 / 2014년  MoCAK, 폴란드 / 2008년 MAK, 비엔나, 오스트리아 / 1991년 쿤스트할레 베른, 스위스

현대미술과의 협업 프로젝트-웨인 맥그리거의 발레 INFRA(로열 오페라하우스, 런던, 2008)를 위한 세트 디자인 / 영국 밴드 블러(Blur)의 앨범 The Best of (2000) 커버 디자인 / U2의 월드투어 Vertigo(2006)의 LED 디스플레이




전시실 2의 주제는 '조깅 혹은 워킹' 이었다.
런던 공원, 서울, 멜버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다양한 이들의 액세서리와 복장으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과 색은 단순하지만 체형과 복장 포인트의 특징은 세밀하게 다르다.



스크린 작품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고인 물속에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요즘 걷고 또 걷고 계속 걷고 있는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도 걸을 줄은 알지만, 남들은 걷는 게 고되고 대견해 보인달까.



2전시실에서 4전시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공간에는 8미터 높이에 달하는 <타워스. 2(2017)>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으로 도심의 이미지를 실내에 옮겨와 전시장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한다는데, 거인으로 자라다 만 앨리스가 된 느낌으로 줄리언 오피 동화책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전시실 4는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지상 풍경으로 복잡한 형상 대신 단순한 색과 면을 보여준다.



중앙에 설치된 다섯 마리 양 조각은 벽면의 풍경이 확장된 것으로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린이 관람객의 행복한 포토 장소가 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논, 밭, 산, 하늘의 경계가 도형의 나열처럼 깔끔하고 단순했다.
바라보면 아득해지는 자연경관까지도 단순화 시켰다.
아주 대범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동양의 절제 미를 숭고하는 철학을 가졌을까 하는 작가 개인 성향이 궁금해지게 했다.





LE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패널은 보는 각도와 거리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재해석 한 것이라고 한다.



도로와 주변 사막을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접한 이 풍경은 안과에서 시력검사받을 때가 더 가까웠다.



줄리안 오피가 만든 세상에서 살게 된다면 어떨까.
모세혈관은 사라지고 대동맥만 남아있고,
하얀 구름은 지워지고 새파란 하늘색이 가득하고
붉으락푸르락 물든 논 밭은 색 도화지 조각의 나열로 이어지고
흩날리던 머리카락은 굵은 선 하나에 묶어두고.

무의미해 보일지 모르는 단순하고 정리된 반복의 움직임이
서글플 것 같다가도 합리적이며 평등할 것 같은 세계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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