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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pr 03. 2018

굳세거라, 굳세었다

[영화] 아이, 토냐 (I, Tonya, 2017)

영화 <아이, 토냐>를 보았다.

미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서나마 과거 실존했던 인물의 다양한 삶을 간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을 때, 가슴 한쪽에서 뻐근한 무게를 느낀다.

그것이 당시의 전례 없던 주체적 여성의 삶의 이야기라면 더 그렇고.

토냐 하딩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어렸을 적 떠나버린 아버지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엄마 밑에서 혹독하게 스케이팅 연습을 했다.

빙판에 오줌을 지리게 할 정도로 연습시간을 아까워하며 몰아붙였던 건 그녀의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도 딸을 위해 스케이팅 비용을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토냐는 재능이 있었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절망을 스케이트와 결부시켜 꿈을 망치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그 선택의 바탕은 토냐가 그만큼 스케이트를  사랑함에 있을 것이다.

편부모, 폭력에 노출되어 자라온 아동은 스스로 개별적인 가정을 꾸릴 기회가 왔을 때에도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것이 가정환경의 분위기를 중요시 생각하여 상대방을 만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토냐는 확실히, 남편을 잘못 만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적으로 토냐가 길러진 가정, 자신이 선택한 가정의 무조건적인 피해자란 말은 아니다.

그녀 역시도 폭력적인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을 때도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안타까웠던 건, 당시 피겨 연맹에서 바라는 점잖고 요조숙녀다운 연기와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둥 피겨 경기력과는 동떨어진 채점기준으로 괴롭힘 받았다는 것이다.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열망 있는 선수는 그래서 더 기회가 소중하고 집착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상대 선수 낸시 캐리건의 무릎을 아작 내는 계획의 시작은 그녀가 아니었을지 몰라도 수사가 진척 되고 있을쯤엔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 선수에 대한 사과나 반성, 일의 수습보다는 올림픽 무대에 집착했다.

올림픽을 향한 집념은 그녀가 선수 생활 내내 받았던 차별과 결핍의 응축된 상징처럼 느껴졌다.

피겨가 떠난 생에도 좌절하지 않고, 권투 선수로 일어선 토냐의 의지에 황홀감을 느낀다.

들소 같은 여자였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일, 사랑, 사람에 열심히 들이받고, 깨지고, 내쳐져도 벌떡 일어나 살아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쓰는 것보다 잘 읽는 연습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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