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집-래여애반다라
정선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책읽기.
굳이 비좁은 버스안이 아니더라도 책을 볼 시간과 편한 장소는 많지만 몸과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글자는 머릿속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쉬이 흩어진다.
잊어야 할 말과 일들은 옹골차게 눌러 붙어 있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글과 사람 이름은
눈도장을 찍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그렇다면 여러번 읽고 또 읽어 외워보려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글쎄, 반복 학습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읽고 싶은 호기심과 변덕이 늘 이기는 쪽이다.
밀리는 도로 위에서 도착할 여행지를 기대하며 어울릴것 같은 책을 읽는 설레임은
그나마 또랑또랑한 정신상태로 보게 되더라.
바다로 가는 길에 읽어본 것은 이성복 시인의 '래여애반다라' 시집이었다.
시집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의 바다는 푸른 융단 같았다.
물위에서 잘박잘박 걸어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을것 같은 고운 길과 같아보였다.
사는게 뭐라고 대담한척, 씩씩한 척 살고 있는듯해도 제각기
바다만큼의 깊이와 우주만한 넓이의 사연을 안고 살더라.
그럼에도 묵묵히 하루를 버티고 살아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를 띄우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단단하고 정중한 속내의 깊이를 감히 헤어릴 수 없어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거친 파도와 해일을 덮어주고도 남을 보드라운 마음은 고요다.
하루의 무게가 쌓고 쌓아진 고요
누구에게도 헤집어지지 않는 고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 되어야 겠다.
또 그런 미안함 밑에는 어떤 생판
짐작도 못할 미안함이
파묻혀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오다,서럽더라 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