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의미의 명절증후군

by 사막물고기

명절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가족이 합체되는 공식적인 날에도 분리되고자 떨어져 나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나라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의 유일하다고 생각되는 가족이자 엄마 한 명이라는 숫자는 너무도 절대적이어서 크고

1의 호젓한 외형과 가리키는 의미는 외톨이와 진배없는 쓸쓸함이다.


동생이 엄마 집에 찾아온다고 해서 엄마 집을 나왔다.

늘 자기 상처와 결핍을 주장하느라 핏대를 세우는 소란한 유형의 사람이 두 살 차이의 남동생이었고, 자기 분노와 울분에 빠져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을 때면 한없이 난폭해져 엄마와 나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 이제 나이가 찼잖아 서른이 넘었으니 그만할 때도 되었지 ' 라며 시간이 벌어다 주는 자연적 치유나 침묵의 힘을 기대했던 건 동화 속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의 친절하지 않은 결말처럼 허무맹랑 자체였음을 깨닫고, 잊어버리고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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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바뀐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타인에게 차이를 인지시킬 만큼 변화됐다는 건 본성과 다른 인격이 맘껏 스며든 후쯤일 텐데 그게 기적이 아니고선 뭐란 말인가.

제발 좀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찾아와 달라고 기도 하는 건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이었던가.


누군가의 기대대로 살아주는 것이 삶의 이유나 목표가 될 수 없다.

이만하면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니, 기대하는 건 역시 한 사람 개인적인 문제이고 모를 이는 영원히 모를 수도 난데없는 타이밍에 번개 맞듯 깨우칠 리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불확실한 미래나 희망에 집착하다 보면 그것만이 내 유일한 바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정말 그랬겠는가?

고작 동생이 가족에게 평균치의 예의를 갖추고 올바른 일을 하도록 애쓰는 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정말 그렇지 않다.


상처 준 이를 향한 최고의 복수가 니까짓 거 신경도 쓰지 않고 개미 똥꾸멍만큼 나를 헤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듯 잘 살고 굉장하게 웃고 떠들고 했어야 하는데, 나름의 복수를 하는 중이라고 자위했어야 아니 뭐라도 했었다면 이 눅눅한 기분이 조금은 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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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순간 그 일을 제외한 모든 사고 회로가 막힌 것처럼 무기력 외엔 모든 욕구가 죽어버렸다.

하지 말자던 생각 하나를 빼니 제대로 돌아가는 생각주머니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날 버스에 내리면서 바닥이 갈라질 듯 철퍼덕 넘어졌다.

누가 밀친 것도 아니었고 장애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떠나려던 버스기사님이 앞문을 열고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괜찮지는 않지만 제발 그냥 가시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괜찮다며 넘어진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좀 더 쭈글쭈글 대다가 아픔이 가라앉으면 일어서도 되는 것을 관심도 싫고 창피함만 커지는 것 같아서 꾸역꾸역 집으로 도망쳐 왔다.

마침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생각은 더더욱 하기 싫었고 몸도 사방팔방 쑤셔대는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험공부도 조금 하고 책도 3권 이상은 읽어보자 했는데 웬걸,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할수록 멍하니 누워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건지 할 수 없었던 건지 헷갈리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고 책 표지 조차 넘길 집중력은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내 무기력 함이 절망스럽다.

의지박약 하고 조그만 일의 외형적 내형적 상처에 참혹하게 무릎 꿇고 마는 꼬락서니가 수치스럽다.

나 하나에도 내가 아닌 모습을 담기가 이토록 어려운데 가족이라고 멋대로 바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폭언과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만.


한 번씩 들뜰 때가 있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사람에 대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나에 대한, 자잘한 기대로.

콩콩대던 심장이 언제 뛰었나 싶게 고요한지 너무 오래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맞았던가


팔자 좋은 소리일 수도 팔자에 빠져 죽기 직전 쉬어보는 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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