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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Feb 23. 2019

[전시회] 키스 해링  전

삶은 곧 예술 !

가뿐하게 평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는 경우가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게 허덕거리다가 꿀맛 같은 주말을 맞이할 때도 있다.


비교적 수월했던 평일 끝의 주말이면 활기차게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바쁘고 고난 한 평일 끝의 주말이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외출의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저번 주에 네이버 페이로 미리 예약을 했었다가 어쩐지 동대문까지는 못 갈 것 같아 취소했었다.


가겠노라 결심을 하면 오히려 부담이 되면서, 처음의 즐기려는 목적이 숙제처럼 바뀌어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미리 계획하고 예약해두는 것은 나의 성질이 감당하기 버거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신한카드 결제 시 할인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당한 길치라 바로 코앞에 둔 입구를 찾지 못하고 사람들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눈치를 보았더랬다.


표를 검수 받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검은색 사방에 키스 해링 작업 영상이 바닥에 투시되는 걸 볼 수 있다.



워낙 유명인사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예술가라 좋고 싫음에 대한 구분이 없었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작가 이름은 몰랐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어디서든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심벌이기 때문에


' 평소 제가 너무 좋아했던 작가라 이 전시전은 꼭 봐야겠어요 ' 하는 생각으로 찾아왔던 건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이 더 크다.



작가 한 명의 개인 전시전은 사전에 예술가에 대한 정보가 무지했어도 전시전이 끝날 즈음엔 


한 사람에 대해서 꽤 심도 싶은 이해와 관심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전시전 관람을 좋아한다.


평소의 호감을 떠나 정성껏 차려진 전시장의 작품을 구석구석 훑고 개인의 연대기를 들춰보면


새로운 인연을 알게 된 느낌이다.



비교적 근대에 작고한 현대미술가라 그런지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발전 방향과 다르지 않았다.


소위 귀족 문화라고 하는 미술작품의 감상을 많은 이들이 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추구한 키스해링과 같은 작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되었을 것이다.



그 시작은 지하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이동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지하철 역 안에 반짝하고 시선을 붙들어 둘 수 있는


키치한 작품의 소소한 시작이 오늘날에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 까 생각해본다.



매일 마주하는 광고판들의 홍수는 새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어떤것이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정확한 해설과 주제가 떨어지는 작품엔 작가의 기교와 숨겨진 장치를 알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보는 이들에 따른 다의적 감상의 여지를 주는 작품은 무한한 상상과 사족을 곁들어 나만의 해석으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키스 해링 작가의 삶이 작품에 녹여져 있겠지만, 시간과 장소 인종과 나이 구분 없이 관객이 느끼는 그대로의 생각을 가지의 가지를 쳐 풍요롭게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스해링의 대표적 심벌중 사람모형을 제일 많이 본 것 같다. 


(정확한 통계로 따지면 하트인지, 개인지,연속성 기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을 존중하고 도움을 주고 싶은 키스 해링의 박애주의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철자는 다르지만 심지어 이름도 키스라고 불리다니.




그는 주목받는 작가이자 셀럽이면서도 많은 유명인들과 작품 협업을 했지만 


어린이, 성소수자, 아이를 낳는 여성,노예,등등 


사랑과 보듬이 필요한 계층을 향한 관심과 지지는 변하지 않았다.



제일 강렬한 느낌을 받았던건 형광색으로 칠이된 전시 공간이었다.



매표소에서 받았던 브로슈어 마저도 알록 달록한 광을 발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슷함에 대해 관대하지 못할때가 있다.


이거 저번에 봤던 거랑 비슷한데 ? 


새로운 것이 아니면 창의롭지 못하고, 창의롭지 못함은 예술가의 상상력이 결핍된것이라는 속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작가의 이름을 말할 때 그 대표되는 이미지가 머리속에서 퍼뜩 떠오른다면 그것은 비슷함에 대한 주입이 아니라 익숙함과 친숙함을 관철시키면서도 새로움을 향해 비상한 각고의 노력일 것이다.


기본을 지키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속상했던 마음이 자신의 역할을 알고 부단히 노력한 키스해링의 말과 


부지런한 작품의 결과물을 보고 다독였다.



한편, 회사에서, 집에서 나의 역할이 어떤건지, 나를 위해 혹은 많은 사람들 위해 해야될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키스 해링은 엡솔루트 보드카 광고 작품 협업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남겼다.



예술과 상업은 매력적인 조합이다.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돈벌려고 작정했네, 예술에 진지함을 잃었네 라고 속단하기 쉽겠지만 


어차피 자본주의 안 속 세상은 돈의 굴레 안에 갇힌 사고 팔고 또 다시 사는것을 조장하는 소비를 부르짖고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고 보고, 즐기는 소비재와 문화를 또다른 예술 영역의 확장선으로 보는 편이 


시각의 고급화를 위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 키스해링이 죽음을 맞이한 나이는 고작 31살이었다.


전시장 안 작가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패션을 한 모습을 보면서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았다면 어떤 작품들이 더 나올 수 있었을까 


그의 심벌들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새로 탄생한 심벌은 그의 내면 어느곳을 담당하고 있었을지 알아 볼 수 없다는게 착잡하고 안타까웠다.






그 당시에 자신의 작품을 대중도 쉽게 만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팝샵을 기획했었다.


오늘날의 굿즈(?) 를 미리 계획했던거지.




그래서 아주 기쁜마음으로 휴대폰 케이스를 구매했다.



언제 어디서나 생활 곳곳에 예술이 깃든 세상을 바랬을 키스해링에게 꽤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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