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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r 02. 2019

연남동 언저리 구경

친구랑 홍대입구역에서 만나 학생 때처럼 돌아다녔다.


물론 중간중간 현생의 신분을 잊지 않도록 체력적 한계에서 오는 피곤함과 옷을 골라주는 조언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34살이 될 때까지 홍대에 와보지 못했다는 게 스스로도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어디가 뜬다, 어디가 핫하더라 하는 곳에 골라 다니는 어른 놀이의 전부에서 아, 난 그 열풍에 휩쓸려 살지 않았던 대쪽 같은 사람이었구나 싶다.



경의선 철길이 있는 경의선 숲길 공원은 길 한가운데로 세로로 죽 뻗어 있었는데 벚꽃 피고 간질간질한 햇볕 내려쬐는 날이면 걷는 걸음걸음에서 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조성된 거리 같았다.


초 입구엔 젊은 남녀 여럿이서 함께 달리는 행사를 진행하는지 운동복, 운동화 차림의 군단들이 시간이 되자 함께 달려 나갔다.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야채들이 물기를 털어내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중심부 길가 쪽 보이는 상가에도 음식점, 꽃집, 카페 등등이 다양한 거리의 분위기를 꾸며주고 있었고 중심부 길을 벗어난 골목 구석구석에도 독특한 분위기의 음식점과 가게들이 많았다.


길은 어딘가로 도착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길을 잃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는 것도 그렇다.


목표와 계획한 이상이 있다면 시도하며 사는 삶은 도전이고, 길을 향해 나아가는 중일 테지만 잠시 방향성이 애매해지거나, 평안히 숨을 고르는 일상을 보내는 과정마저도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 조급해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무언갈 찾아야 하고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채찍질로 스스로를 방랑자로 떠돌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홍대 쪽으로 찬찬히 걸어오면서 토토로의 숲 가게를 구경했다.

늘 내가 먼저 사진을 찍어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는데 나를 먼저 찍어주려는 친구의 행동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 사진 속 내 모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그 간격에서 오는 혼란과 괴로움으로 카메라가 무서운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모습은 쳐다도 보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멋대로 찍고, 내 눈앞에 들이밀어주는 고맙고 잔인한 친절 덕분에 내 머릿속으로 생각한 모습도 내가 맞고, 카메라 속 이 낯선 모습도 내가 맞다는 생각을 하며 안아보는 중이다.


친구도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라고 말해주지 않아 고마웠다.

슬쩍 찍어 '이거 어떤 거 같아?' '내 애정의 시선을 담았어!'건네는 예쁜 말과 배려 덕분에 애정의 시선을 받아 든 내 모습이 어쩐지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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