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았다는 것, 공통점이 있다는 건 위험하다.
그것들은 마음이 유약해진 틈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조금의 틈을 주지 않고 들러붙는다.
우리 강아지가 떠나고 나서 같은 종류인 시츄 견종만 보면 가던 발걸음을 돌려 몇 걸음은 더 그 강아지를 따라갔고 이제 좀 진정이 되었겠지 싶을 때에도 '강아지'라는 공통점을 핑계로 눈에 밟힌 강아지 곁에 우리 동글이를 나란히 세워 떠올렸다.
자주 산책을 시켜주지 못한 죄책감이었을 수도 있지만 미안함이든, 그리움이든, 그게 무엇이든 사소한 닮음을 이유로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서 막 등을 돌리고 나온 시간으로부터 경과된 시간까지는 정확히 어느 정도 견딜만함의 비례곡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비슷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안겨준 사람과 웃는 눈꼬리가 비슷하다거나, 안경테의 색깔이나 두께가 비슷하다거나, 하는 사소한 디테일에 눈앞에 있는 사람을 경계하게 될 수도, 반대로 알아가고 싶은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고 다른 인격체다.
공통점에 대한 동조를 주변인에게 물어보았을 때 '아니 전혀!'라고 듣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든 닮은 대상자를 끼워 맞추고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야 안심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거나 호감을 느끼는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전까지 알아왔던 유형의 사람이 아닌 만남에서도 긴장과 침묵을 풀고 싶지만 어쩌다 한 번은 될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이 되는 건 '닮음'의 카테고리에 놓인 사람들이 된다.
더 만나보아야 끝이 뻔히 보이는 관계도 있는데, 조금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면에 필요 이상으로 경계심을 허물어 버린다.
처음엔 모두 낯선 사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당연한데도 먼저 다가서지도 못하면서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도 어려워, 하지만 마음은 주고 싶어 닮은 곳을 열심히 찾아본다.
나중, 닮음의 빗장을 풀면 줄줄이 따라 올려질 달큼하거나 쌉쌀한 사탕을 꿰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