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엄마와 코로나에게 쓰는 편지

떠나기전

by 사막물고기

제주도로 떠나기 하루 전.

엄마에게 남길 편지를 프린터로 출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공공도서관 복사카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시립도서관에 도착했지만 2월 28일부터 잠정 휴관 중에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매일 도서관에 가 책을 읽겠다는 다짐은 그저 망상뿐임이 근 두 달 만에 탄로 났다.

많은 공공시설이 문을 닫고 있는데 제주도에 가겠다는 마음이 철없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취소라는 선택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고,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겠다, 다른 관광지를 가려는 게 아니다, 그저 올레길만 완주하고 오겠다 등등의 변명으로 세상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마침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았는데 제주도를 가려다가 티켓을 취소했고 여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증거는 없어 거짓말을 하고 제주도에 간 것이 맞지 않냐는 비난 댓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 가장 기본지침인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키려 하지 않는 모습은 모두의 공분을 살 수 있다.

다들 답답하지만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맞다.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함이 옳다.


2월 20일 퇴사일부터 4월 중순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거의 집에만 있었다.

외출을 한다면 30분 내외 근거리로 잠깐씩 다녀왔고 자차를 이용해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러니한 건, 잠깐의 외출 시 보인 바깥 풍경(대부분 산책로)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반면에 유동인구가 줄어 자영업자들의 생계가 곤란해질 정도로 한산한 거리가 있었고, 영화관, 쇼핑몰 같은 실내형 인구 밀집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동에 조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어쨌든 집을 나와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발을 묶어두는 방법을 강구할 순 없을 것이다.

외출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보다 철저한 위생수칙을 다 같이 지켜나가는 적응형 생존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행은 이 시기에 적절치 않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안고도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가슴 깊은 사정을 알 수 없고 전부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보이는 일부분이 경솔했다 하여 매를 맞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나의 경솔함을 잘 가려둘 수 있거나 들키지 않았다고 해서 돌을 던질 자격을 얻는 것도 아니다.


백수였고, 집순이가 체질이던 내가 바로 얼마 전까진 밖을 나와야 할 이유 따윈 없었지만 눌러두고 있던 트라우마가 터진 지금은 집에서 도망쳐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거리를 두어야 그들이 비난하는 내 모습이 나의 한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걷고 걸어 보이겠다.


그리고 길에서 조금은 더, 편안하고 고요해진 나라는 친구와 함께 가족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고, 귀중한 엄마께.

차분하고 평화적인 대화 방법은 과연 멀기만 한 걸까?
대화를 하다 틀어졌고, 오해가 쌓여 있고, 아직도 서로의 서운함이 생생하기 때문에 마땅히 대화로 풀어야 함이 맞겠지만 말을 건네기가 어렵네.

이성보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편지로 적어보고자 해.

엄마가 이 편지를 읽게 되면 난 집에서 나왔을 거야.
그 전에 서로 행선지를 물으면서 아침인사를 하던 일상으로는 하루 이틀새에는 돌아갈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아마 나는 말도 없이 쑥 없어진 상태일 거야.

우선 그때 마무리 짓지 못한 얘기로 돌아가서, 엄마 앞에서 동생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우리 둘이 사이 좋게 지내는 게 엄마의 큰 행복이라고 늘 말했는데 계속 어긋나는 걸 보면 우리 남매는 그게 참 어려운가 봐.
엄마를 위해 자식들이 힘과 의견을 모으고 궁리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우리 둘은 작은 이벤트나, 성의 표시도 한 적이 없었네.
철없고 이기적인 우리들을 품어주고 있느라 고생이 많아. 그리고 또 미안해.

(중략)

내가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엄마만큼 챙겨주고 잘해줄 자신은 없지만 여러 번 폭언,폭행에 노출되었고, 그 사건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했다면 어떻게든 감싸주는 말을 해주었을거야.

사기 친 사람이 잘못이고, 도둑질한 사람이 잘못이고, 때린 사람이 잘못인거지 왜 그럴만한 짓을 한 것처럼 말하는거야 ?

이 논제에 나 혼자 나를 변호하는게 참 어이없고, 슬펐어. (동생)이 수십분을 떠드는 동안 난 몇마디 했어? 내 표정이 굳어지기전 계속된 조롱과 놀림에 그만하라고 말했고 웃지 않았던게 밥상을 들어 엎을 만큼 화를 부추긴거라고 ?

엄마는 물론 (동생)이 잘못은 했다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온순하게 잘 지내온 평화가 깨진걸 내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그 뒤에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심정에 목소리가 높아져서 대화를 이어갈 수가 없었어.
엄마는 내가 상황을 너무 비약해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는데 그날 밤새 잠도 못자고 그때의 문제와 과거 사건들을 곱씹으며 속이 끓고 있었을 나를 조금은 생각해줘.

(중략)

학창시절 때 동생이 때린다고 얘기하면 엄마랑 아빠는 장난식으로 몇 번 맞는 정도로 생각했고, 지금은 내가 좀 유난이라고 생각하는듯 해.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줬다면 쟤를 어떻게 좀 해주지 않았을까?
아빠도, 엄마도 이 집안에서는 아무도 무섭지 않고 길고 날뛰는 애로 커갔잖아.

(중략)

내가 상담받았던 상담사는 같이 울어주고 손을 잡아줬는데 정작 내 가족은 내가 얼마나 고통길을 걷고 있는지, 힘든지 알아주지 않아.

(중략)

‘전과 다르게 화를 내지 않네, 전과 다르게 유머가 많아졌네, 전과 다르게 설거지도 하네’
그렇게 전과 다른 면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서 엄마랑 나는 달라질거라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 같어.

나는 이제 못하겠어. 이런일 있을때마다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거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또 어떻게 스리슬쩍 넘어가게 되고, 내 상처는 또 기만당하고 아무것도 아닌게 되곤 했지만 반복되니까 나는 점점 감정불구자가 되는 것 같아.

짜증을 내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 같아.
마음속의 백가지 화와 분노중에 고작 몇 개를 꺼내는것도 왜 나는 눈치를 봐야하지…

(중략)

엄마가 사랑으로 키워온 딸이잖아.

조금 더 크고 존엄한 문제들로 싸우고 고민할 수 있도록 믿어줬으면 해.

술먹는 남편에 대한 상처가 있듯.. 술먹는 아빠를 나도 보면서 자랐잖아.

밑빠진 독에 다시 물을 붓는것처럼 실망이 반복되고 그럼에도 우리가 성인이 될때까지 참고 희생해준 엄마한테 너무 감사해.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었던 시간들도 같이 감싸주고 내가 제일 잘, 많이 이해해주고 싶어.

엄마가 아파했던 시간들을 고작 00때문에, 엄마가 00이런걸 못했기 때문에라고 폄하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조금 슬픈 건,,
존중을 좀 받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난 구석이 없고. 엄마한테 자랑거리가 될 만한 구석도 없고 그게 사실인 걸 알면 갱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포기하는쪽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나도 상처주는말 하지 않을 테니까 나한테도 좀 하지 말아줘라고 부탁하는 것 밖엔 할 수가 없다는거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지 못해서 미안해.
늘 흔들리고 위태롭고 걱정만 끼쳐서 미안해.

갈수록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파고 들어.
그리고 나는 잘 이겨낼 수 없을 것 같고..

내가 독립은 했었지만, 자취생활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엄마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물리적인 거리도, 심리적인 거리도 엄마 가까이 부대끼면서 힘들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나한테 친구로, 언니로, 또 엄마로 모든 역할을 다 해주었고 나도 그 어떤 사람들보다 엄마가 소중하고 유일했기 때문에 더 많이 서운했던 것 같아.

조금 더 독립적인 딸이 되어서 돌아올게.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덜 매달리고,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섭섭함에 목매지 않도록.

남들이 볼 때는 사이좋은 친구 같은 모녀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건강한 모녀사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요 며칠 편하게 가려면 얼마가 필요한가를 계속 찾다가 죽는 비용 보다 훨씬 적은 사는 비용을 질러보기로 했어.

편지 앞부분이 너무 어둡고 충격줘서 미안해.
가끔 엄마가 내 감정선을 모를때가 많은 것 같아서 극적으로 쓰긴 했어.

둥글둥글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둔하고 유하지 않아
나는 되게 예민하고 여리고 뾰족한걸.
그냥 너무 힘들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뿐이야.
정말로 동생을 죽도록 미워하진 않아.
걔도 엄마가 예쁘게 키운 자식인걸….
1달 뒤에 만나.
밥 잘먹고, 발가락 빨리 붙고, 이젠 아픈데 없도록 내가 많이 빌게.
조근 조근 좋은건 좋다, 싫은건 싫다라고 점잖게 표현할 수 있는 법을 배워올게
사랑해.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건 다 엄마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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