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제도 모르고 제주에

섭지코지 그리고 숙소적응하기

by 사막물고기

한동안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 알림을 새벽4시로 설정했지만 밤새 뜬 눈으로 뒤척였기 때문에 울리기 전 바로 끌 수 있었다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야 했고 그것이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쓴 목적이었던지라 캐리어 하나, 배낭 하나를 옮기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집에 없다는 것을 편지를 보고나서야 알 수 있길 바랐다.


무사히 현관문을 닫자마자 가파른 고개 하나를 넘은것 처럼 심장이 뛰었다.


가출 한번 한적 없었고, 아이보단 늘 어른의 성심에 가까웠다고 그래서 착하고 조숙하다는 평을 듣고 살았었는데 지금에서 반항과 치기를 부리는 것을 보면 어른의 마음을 일치감치 당겨 써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7시 출발 비행기를 예약 후 공항 리무진 시간표를 찾아 5시 7분 차를 타는 것으로 확인만 했었다.


버스타고 어플을 통해 미리 예매할 수 있었지만 블로그에서 비교적 최신일자의 버스시간표라고 단정짓고 예매하지 않았다.


자주 사용할 일 없을것 같은 어플을 설치하는게 싫어 어떻게든 없이 하는 방법대로 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은 리무진 버스 시간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용 승객이 적어 단축 운행을 한다는 공지글을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7시 비행기를 취소하고 7시 40분 표를 예매했다.




당일 취소라 수수료를 뺀 환불 금액은 반토막이 나있었다.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멍청 비용이 뭉텅 나간셈이다.


(비슷한 이유로 제주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도 취소 후 다시 예매해야 했다.)


공항도착 시간을 확인한 뒤 비행기 시간표를 고를 것.


싸고 번거롭게 비행기표 예매법을 익힌거라고 달랬다



4년만에 떠난 제주도이자 4년만의 여행이었다.


(당일치기 여행은 어쩐지 외출이라는 이름이 더 울린다.)



이리 저리 발길 떨어지는 곳에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던 지난 여행과는 다르게 이번엔 한곳에서 숙박을 정했다.


올레길 완주에 최적화된 숙박시스템 하나만 보고 선택했다.


제주도에서 하고픈 건 길따라 바람따라 흐르는 자연경치를 가득 보면서 나의 임무는 오직 걷는것 뿐이라고 믿는 일이었다.


숙소에 짐을 푼 뒤에 본격적인 올레길 걷기는 내일 아침부터 참여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고, 오늘의 잉여 시간은 자유시간으로 활용했다.




숙소와 가까운 섭지코지에 갔다.


입구에 즐비했던 전동 스쿠터가 몇대만 빼고 사라지고없었다.


관광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여 사업을 잠시 중단한건지, 아니면 이정도의 규모로 차츰 줄어든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번도 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었고 특히 섭지코지를 배경으로는 전동휠, 스쿠터가 들 쑤시고 다니는 듯한 모습은 눈살이 찌푸려 졌었기 때문에 지금의 작은 대여소 정도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완연하고도 농익은 봄이다.


유채꽃이 새초롬하게 펼쳐진 모습을 보면서, 감탄과 환성이 전보다 들리지 않아 꽃들도 의아하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풀, 나무, 꽃은 다른 지역과 제주도를 구분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자연이지만 역시 돌은 다르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 한개 이상일 때는 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경관을 볼 수 있게 관람로가 짜여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연에서 만큼은 반드시 정해놓은 관람 방향이 없어야 되는게 맞을 것다.




도망치듯 떠난 제주도라, 그리고 내가 힘들고 울부짖기 일보 직전에만 제주도를 찾는것 같아서,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확신이 들어서, 제주도에 수없이 많은 돌을 보면 누군가의 응어리들이 툭툭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든다.




4년전 이밤때쯤의 제주여행은, 내가 혼자 처음으로 여행을 한다는 기분에 취해 며칠은 황홀했었던 것 같다.



가림막 없는 날것의 하늘, 어딜가도 감도는 바람으로 집보다는 숨통이 트인것 같았지만 이 역시도 이미 알고 있는 느낌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어른, 기대감이 없는 어른, 미래의 꿈을 꾸지 않는 어른으로 커버렸고 가슴이 콩닥 콩닥 바쁘게 뛰느라 잠을 놓친 설레임은 잊은지 오래였다




유민미술관에 입장하기 전, 엄마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잘 도착했니ᆢ?
무거운 맘으로 떠났지만
니맘이 편안해지고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라고 건강하게
지내다 와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


눈물이 왈칵 나올것 같았다.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만 들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인정과 보살핌을 받은것 같다.


일본 오사카 출신의 안도 타다오 건축가가 유민미술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떠한 색도 입히지 않은 콘크리트와, 돌담이 잘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했고 그보다 더 깊은 정숙함을 보여주는 건물이었다.




섭지 코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건물 곳곳에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고 한다.


의도를 담아 보여줄때에 글과 말은 그래도 비교적 쉬운편이 아니겠는가.


건물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가능하지 않은 명제들을 실현화 시킨 사람들은 그래서 대단하다.


입구를 지나 지하 전시장으로 따라 들어가면서 벽과 돌담사이에 가로 막힌 내 마음의 좁은 문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위로 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돌담이 지나치게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다.


희망을 주는 고문,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 아니었을까 반성해본다.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20년간 유럽전역에서 일어났던 공예, 디자인 운동인 아르누보의 유리 공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에술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예술이 고고한 박물관을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운동이다.


그래서 인지 유리의 물성을 생각하면 도무지 가능할것 같지 않은 주제와 기법이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용도는 화병, 유리컵, 접시,전등으로 사용된 것이다.


위 사진은 청춘,중년,노년을 버섯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실생활형 작품은 아니지만, 삶과 가까운 철학적 사유를 돕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느끼지만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보려고 해도 눈으로 보고 있는 경관의 반의 반의 반도 담지 못하는것 같다.




섭지코지에서 제일 높은 곳,


등대에 올랐다.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멀리, 높이 가슴속의 상념을 떨어뜨릴 수 있을것만 같다.


망망대해를 보면서 깊은 수심은 고요하지만 속을 알 수 없고 육지와 가까운 얕은 수심은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 보이지만 물살이 몰아치느라 바쁘고 쉴새없이 조잘거리는 느낌이었다.


난 어디쯤에서 헤어치고 싶은 사람인걸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거대한 리조트 마을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다.


파도가 코앞으로 몰아칠것 같은 돌을 자리 잡고 앉아서 한치빵을 먹었다.




그리고선,섭지코지 입구이자 출구쪽에 있는 카페에 들러 딸기 스무디와 핫도그를 또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카페에 되도록 가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잘 지켜질수 있을지 모르겠다.




50여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의 장단점을 따져보자면

장점은 아침과 저녁이 제공되고 낮에는 행동식이라고 해서 간단한 간식을 또 챙겨준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소등시간, 출입 금지 시간이 없다.


1달 기간동안 방을 대여한 것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나가고 싶을때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는 아무 제재가 없다.


샤워할 때 물살이 세다. 온수가 잘 나온다.


빨래도 세탁망에 담아 내놓으면 해준다.


단점은 호텔로 짓다 망한 건물을 임대한 것 처럼 부대시설이 을씨년스럽다.

본래 2인실인데 아직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1인실로 사용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도 4-5인 도미토리를 예약했지만 손님이 없어 혼자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제주에서 손꼽는 운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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