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4년전 제주여행과 지금

올레11코스(모슬포-무릉 올레)

by 사막물고기


올레길11코스

전날 고작 12키로를 걸었을 뿐인데 저녁8시부터 골아 떨어졌다.


그날의 기록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초장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두편을 연달아 적는 중이다.

귀찮음과 체력이 지지않고 이 글이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숙소 로비에는 귀신이 돌아다녀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폐허의 느낌이라 몇명의 사람들이 이 숙소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올레11길 출발지인 하모체육공원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을 때 꽤 많은 (20-30여명정도)인원이 타고 있는것을 보고 안심했다.


약식으로 짧게 걷는 거북이 반과, 정식으로 모든 거리를 밟는 토끼반으로 나누어 걸을 수 있다.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완주자가 되기 위해 토끼반으로 손을 들었다.


출발하기 전 11코스를 걸었는지 4년전의 나의 제주 기록을 다시 보았다.


하루 온종일 무거운 가방을 이고 끌며 끙끙댔던 사투를 보고 피식했다.


아, 무식하고도 용감했지만 4살이 어렸기 때문에 도전해볼 수 있었던 무모함이었다.


수고했다고 스스로 토닥거리고 다시 한번 같은 길을 걷겠다고 말해주었다.




11코스는 초반 1-2키로 정도만 바다가 보이고 이후부터는 내륙으로 걷는 코스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건, 평탄하고 곧은길을 걷기 때문에 수월하면서도 땡볕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길이 되기도 한다.



모슬봉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선두그룹에 속하면서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함께 걷는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따로 또 같이 걷는데 누굴 기다려줄 필요도 따라가겠다고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햇빝 때문에 선글라스를 쓰지만 꼈을 때와 맨눈으로 볼때의 색감은 너무도 다르다.


자연의 색이 주는 신선함, 감정의 색채를 지우고 그저 갈빛 차단막을 한꺼풀 씌우는것 같다.




그래서 안경을 벗었다 썼다하면서 본래의 색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만 코스길을 끝내야 하는 마지노선 시간이 있는지라 점점 따라가기 버거워졌다.


새끼 발톱이 아파오면서 속력을 낼 수 없었다.




내 몸에 생긴 문제, 내 마음에 잠식한 불안 모두 누가 해결해 줄 수 없다.


나만큼 가장 잘 알고 있을리 없고, 나만이 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쿡쿡 쑤시는 발가락의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것이다.


크고 작고, 얕고 깊은 병치레 한번 없이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는것에서 아픔을 뺀 삶은 상상 할 수 없다.


그동안의 게으르고 나약한 생활의 업보가 힘을 얹어 발로 가해진것만 같았다.


제주 여행 중 날이 맑은편이 백번 좋지만
온 몸을 달구고, 머리 끝을 찡하게 조여오는 햇빛은 순간 순간 괴로울 때도 있다.


집에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통증이지만 모두가 집에 머물기를 권고 받는 요즘엔 귀한 고통이다ㆍ




마늘 밭을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숲과 자연 식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지칭한 이름을 물으면 곧 잘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


마늘 밭을 지나면서 그래도 4년전에 와본 곳이라 마늘이라고 알 수 있었던 것일 뿐, 그때도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으면 오늘도 모른체 넘어갔겠구나 싶다.


내가 모르는 대부분의 것을 엄마에게 배웠다ㆍ 흘려듣고 지나쳐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엄마였음을 잊고 있었다.




정난주 마리아의 묘와 함께 공동묘지가 많은 대정읍은 유독 고요하고 침묵의 소리가 따로 들릴것 같은 곳이었다.


곶자왈에 들어가기 전, 단팥빵과 삶은 계란, 사과반쪽,그리고 망고 주스를 점심으로 먹었다.




곶자왈에 들어가서 길을 잃으면 다시 길을 찾기도, 구해러 가주기도 쉽지 않다라는 괴담을 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이전에도 들었었고 그때는 혼자서 걸었기 때문에 특히 더 긴장했었다ㆍ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전보다 올레 리본 표식이 더 많아진것 같고 그래서 길을 따라 가기가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곶자왈은 참 신비스러운 곳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곳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 무쌍한 길이 펼쳐진다.




그러니까 몇걸음 전까지는 숲 길 안에 있었던것 같은데 갑자기 아프리카 건기의 평야를 마딱 뜨리기도 하고




바닷물에 푹 절여졌다 나온것 같은 이끼 가득한 돌이 빛을 받고 있는것을 본다.




발자국 소리가 콩콩 울린다.


이 숲 아래에는 속이 빈 또다른 세계가 있다고 알려주는게 아닐까.




곶자왈에 들어서고 부터는 최하위로 뒤쳐졌다.


끝에서 2번째로 도착했으니까 거의 꼴찌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전부 앞질러 가고 홀로 길에 서있어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걷다 보면 끝이 보일 것이고


나는 이제 겨우 올레길 시작점에서 꿈틀대고 있기 때문에 남은 길은 너무도 까마득 했다.




세월아 네월아 터덜터덜 걷던 지난 11코스와 비교하면 오늘은 바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ㆍ


뱁새가 황새 따라갈때 찢어진다는 가랑이가 시큰거린다.




걸음이 느려야 생각이 순환되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것은 아니다.


그때보다 한층 빨리 걸은 오늘과 비교해서 보면 걸음과 생각은 상응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가끔씩 기나긴 길 위에 서는건 무엇을 위해서일까.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적어도 한가지 이유는 찾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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