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7. 소란
올레15코스(한림-고내올레)
by
사막물고기
Apr 22. 2020
길을 걷는건 다채롭고 매 순간 살아있음을 다시 느끼고 있지만 제주에서의 생활도 오늘 뭐했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답을 해보자면 단조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올레길 한 코스씩을 걷고 숙소로 돌아와 쉰다.
그게 다다.
숙소에서는 샤워를 하고, 그날의 기록과 발가락의 물집을 정리한다.
그리고 책이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데, 첫날을 빼고는 도통 푹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골아 떨어질만큼은 지치지 않았던건지 반문하면 매일 고관절과 발가락이 돌아가며 어느쪽이 더 아픈지 싸우는 중인데 열심히 걷지 않아 잠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라면 서운하다.
집이라는익숙한 공간을 일단 떠나고 싶었다.
공간의 변경은 삶의 환기가 된다고 믿었지만 돌아가야 할 자리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마치지 못한 숙제를 남겨둔 것처럼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정말, 일할 곳을 알아봐야 할 것이고 마주보기 껄끄러운 동생과도 계속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덮어두고 모른척 했던 걱정들이 문득 치솟는 밤을 보냈다.
해안가를 오래 걸을 수 있다는코스 소개를 보고 두근거리며 15코스를 시작했다.
15코스는 A코스와 B코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A코스는 난대림 숲과 중산간 풍경을 볼 수 있고 B코스는 곽지 애월해안 절경을 볼 수 있는 길이다.
A코스보다 다소 짧은 13km의 B코스를 걸었다.
재미삼아 하는 일심동체 게임중 한 문항은 산, 바다 중 선택하는 질문이 있는데 보다 많은 횟수를 바다로 선택했었다.
그만큼 바다는 나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제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바닥에 턱턱 두고 농작물을 말리는 모습이다.
아무도 주워가리라 의심조차 하지 않는것일까
없어지면 그런가보다 무던하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인가
어느쪽이던 바닥에 널부러진 농작물은 겁도 없이 말려지는 중이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 왔지만 길을 걸을땐 듣지 않는다.
숙소에서만 사용하고 있는데, 올레길을 걸으면서는 단 한번도 음악,오디오북을 듣지 않았다.
딱히 듣고 싶은 노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이라는 오디오가 어디서든 흐르고 있었다.
특히 덩굴과 잎이 무성한 곳을 지날 때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가 청아하고
해안 도로를 지날때 끊임없이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간지럼을 태운다,
그런 소리들이 빽빽하게 마음에 들어차면서 시덥지 않은 고민과 걱정들이 들어찼던 공간을 헹궈낸다.
(그리고 홀로된 밤이 되면 다시 사념들로 가득차겠지만)
곽지 해수욕장에서 한담해안으로 이어지는 바다는
협재바다와는 색과 결이 사뭇다르다.
협재해변은 옅은 코발트 빛의 잔잔한 평화라면
곽지해변은 깊고 그득한 푸른눈의 전사처럼 용맹한 느낌이었다.
유명 해안 근처에는 개성있는 카페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바다의 친구는 역시 커피지 않겠냐며,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생김새를 뽐내며 사람들을 부른다.
탁트인 바다를 눈앞에 두고 홀짝이는 커피가 맛이 없을리 없겠지만 그 잠깐의 시간을 위해 바다곁에서 요란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마을 사람들이 정자에서 담소를 나눌법한 포구쪽 적막이 이제는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담해안로쪽은 4년전보다 더 시끄럽고, 생활 쓰레기가 산책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리조트, 펜션, 게스트 하우스, 빵집, 커피, 등등이
다닐 수 있는 공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바다 가까이 어우러질 권리가 있지만 이렇게가 맞는걸까 싶다.
뉴스를 보는데, 곧 있을 황금연휴를 맞아, 제주도 예상 방문객이 4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꽁꽁 닫혔던 관광지, 공공시설들도 휴양림을 중심으로 차츰 차츰 풀어지고 있었다.
제주의 찬란함을 다같이, 안전하게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란다.
keyword
제주도여행
제주올레길
곽지해수욕장
5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사막물고기
직업
회사원
꿈은 오아시스 부끄러움,그림자,음울에 대한 기록
팔로워
267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6.푸릇푸릇
8. 한기와온기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