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기와온기

올레16코스(고내-광령올레)

by 사막물고기

어제는 숙소에 돌아와 일과를 마치기 전,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시간임을 확인하고 광치기 해변쪽으로 일몰을 보기 위해 걸어갔다.

다음날을 위해 충분히 휴식해주어야 할 것 같은 날이 있지만, 또 반대로 이상한 기운이 샘솟아 더 활동해도 괜찮을성 싶은 날도 있다.


나는 내 체력을 대게 불신하는 편이지만, 올레길을 며칠 걸으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붙고 있다.


조금 더 걸어봐도,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멀리 가보아도 하루 하루 목적지를 완주하고 있었다.

물론 다리와 발은 계속 아프다.


오른쪽 고관절이 아팠었는데 지금은 왼쪽 고관절로 통증이 옮겨왔고 왼발은 괜찮은데 오른발은 매일 물집을 터트리고 약을 발라도 계속 생기면서 따갑게 하고 있다.

오래, 많이 걷는다는건 어차피 이런 저런 통증을 수반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마음을 비우고 있다.


일몰 시간을 확인하고 바지런히 걸어간 광치기 해변에는 해의 하루 끝자락을 배웅하기 위해 예닐곱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짙은 주홍선을 드리우며 장렬한 노을을 볼 수 있겠지 기대했지만 구름이 잔뜩 드리운 어제의 마지막은 심심하게 장막을 닫고 말았다.

가슴에 남을 한편의 시가될 풍광은 하늘길이 열려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를 떠나기 전, 해변의 일몰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조식을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아침이 가장 배고프고, 뭔가를 먹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연료를 공급받고 부릉부릉 시동을 건다.


조식을 먹고 버스에 타기 전 화장실을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예상치 못한 지점에 배가 살살아프기 시작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으며 식은땀이 난다.


출발지에 도착해서 후다닥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뱃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연료는 잘 공급받고 있지만 배기가스 배출은 문제가 많았다.

16코스의 시작은 고내포구에서 시작해 애월해안도로를 따라 간다.

해안도로를 걷는 동안에는 구름이 채 가시지 않아 쌀쌀했다.


몸에 한기가 느껴지면 걸음을 빨리하면서 땀을 낸다.


지퍼를 단단히 채우고 땀을 빼다가 사진을 찍는다고, 다리 통증이 시작된다 싶으면 속도가 줄게 되면 재빨리 땀이 마른다.

열기와 한기가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제주 바당올레길이 단조롭지 않은건, 바다를 끼고 아스팔트 길 뿐만 아니라 좁은 습지와 비슷한 길, 돌무더기가 촘촘히 박힌 자갈길 등 다양한 길을 디뎌 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거친 파도와 물살을 받아쳐내는 기암괴석의 절경이 신비로웠다.


손재주가 좋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 이런 소품을 만들었는지 신통방통한데, 잘하면 나도 만들수 있지 않을까 한번쯤 도전을 생각하지만 자연의 빚어낸 절경은 입이 떡벌어지게 감탄할수 밖에 없다.

인력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제주의 경제를 책임졌다는 구엄리의 돌염전을 볼 수 있었다.


물물교환 거래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소금을 주는 만큼 다른 농작물, 물건을 그만큼 받아왔다고 한다.


해안 올레길이 끝나면 밭담 올레길로 접어든다.

수산봉을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꽤 힘들었다.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건데 뭐하러 올라가냐고 한다.


모르는 기분은 아니지만 고생이 묻어난 정상의 풍경, 땀을 식혀주는 바람의 감촉은 오르기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올레길은 마을 구석 구석을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코스도 있다.


그래서,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집, 집터만 남고 폐허가 된 집, 소박하게 사는 집, 부내가 풀풀 풍기는 집 등등 다양한 집을 구경할 수 있다.

해안도로를 벗어나면서 부터는 먹구름은 가신지 오래였다.

이때부터는 볕의 따가움과 눈부심과 생동한 빛을 눈으로 보고 싶은 욕심과의 국면전으로 들어선다.

항목유적지의 터를 지나,

여전히 눈부신 유채꽃밭을 지나면

항파두리 토성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연하늘에 희고 풍성한 구름, 파릇파릇한 초록.

따로 봐도 싱그럽고, 함께 보면 전부 한페이지의 그림이 되어 간다.

광령 마을에 들어서면서, 16코스도 막바지라고, 얼마남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던 중에 동네 강아지들과 회동을 가졌다.



코 끝이 까슬까슬하게 벗겨진 누렁이는 먹을것 좀 달라며 몸을 부벼왔고,

펜션앞 흰둥이는 귀여우니까 사진좀 찍자고 했더니 빨리 가라고 짖어댔다.


지칠대로 지친 코스 막바지가 언제나 가장 힘이 든다.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몸이 그에 맞춰 저전력 상태로 들어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얼만큼 걸었는지 얼마큼 남았는지 모르고 걷고 싶을때가 종종 있지만, 이 역시 수많은 핑계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도로에 떨어진 동백 꽃잎을 보았다.


동백은 갔지만 곧 돌아오는 계절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떠나갔지만 보고파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다시 돌아오는 계절안에 살게 하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은 야간 트레킹이 있는 날이다.


저번 주, 백약이 오름에 따라가지 못한 아쉬움을 금주부터 제주를 떠나기전까지는 매주 목요일 트레킹에 참여해보고자 한다.

이번주는 아부오름(앞오름)에 다녀왔다.


둘레를 따라 걷는 원형분화구였는데 오름에 올라가기까지 초반 경사가 급했지만 짧은 편이라 참고 잘 오를 수 있었다.


20200423_183714.jpg
20200423_184233.jpg
20200423_184815.jpg
20200423_184335.jpg


20200423_185759.jpg

새빨갛던 촛농이 천천히 숨을 꺼뜨리면서 번져나가는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이 오늘의 노을과 닮았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 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