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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9. 도심
올레17코스(광령-제주원도심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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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물고기
Apr 24. 2020
왼쪽 고관절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다.
이 숙소에서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을 잔적은 하루 뿐이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이 들고, 실컷 잤다고 생각했는데 새벽1시 30분이었다.
그렇게 두어시간 뒤척이고난 뒤, 눈을 붙이고 있으면 여섯시 반쯤 다시 눈이 떠진다.
어쨌든 집이 아닌 곳은 불편하다고, 맘이 푹 놓이지 않는다는 본능의 신호인건지 모르겠다.
꿈을 꾸었다.
집앞으로 갈테니 바로 나오라는 친구의 일방적인 약속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런식으로 약속 잡는것이 편치 않다, 미리 날을 정하고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혔으나 ' 그냥 다음에 보자, 오늘은 좀 그래 ' 라는 세련되지 못한 문장으로 표현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이같은 약속이 재발되지 않도록 나의 의사를 힘주어 얘기했었어야 되지 않았나, 꿈에서도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었다.
남자들과의 만남도 비슷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연락에 회피하기 바빴다.
이렇게 뒷걸음질을 쳤는데 그때 맛보지못했던 감이 생각나 한번씩 쿡쿡 찔러보는 식으로 연락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고 명확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달하기 보다, 이쯤되면 다시 봐야할 사이일수 밖에 없나, 그렇게 흘러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무력하고, 어리석은 여자였다.
꿈속의 여자만이 그랬다면 좋겠지만 눈을 뜬 같은 여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18.1km 올레 17코스를 걸었다.
잠자리도 시원치 않았고, 점점 늘어나는 키로수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밥을 먹고도 달달하고 자극적인 것이 먹고 싶어졌다.
초콜렛을 입에 넣는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어떤 분들은 치킨, 돼지고기 등등 고기가 몸에서 당긴다고 했다.
이는, 몸에서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거라고 하는데, 나는 고기보단 달달한 간식거리들이 당겼다.
그동안 설탕에 빠져 지냈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오늘은 아스팔트 도로를 꽤 많이 걷게 된 날이었다.
초반부 무수천 교를 따라 걸어가며 엄마가 봤으면 참 좋아했을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푸른 평야와, 길가에는 오밀조밀한 들꽃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외도천교쪽은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산책길을 감싸주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내게 점점 더 가혹해진다고 서운해하고 편을 갈라도 가까이 몸부대끼며 살고 싶은 사람은 엄마 밖에 없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지나는 제주의 마을, 민가, 펜션들을 보면서 엄마와 함께 사는 그림을 상상해보곤 한다.
작년 4월에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우리 동글이도 상상속 그림에선 여전히 뛰놀고 있다.
왼쪽엔 바다를 오른쪽엔 차가 계속 지나다니는 도로를 끼고 걷는 길이 반복되고 있었다.
멀리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상징인 간세 모양 등대가 점점 가까워지는것을 보며,
해변에서는 서핑보드를 안고 물살을 타려는 청춘들의 발랄한 웃음소리가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에서 첨벙첨벙 놀던때가 언제였었나.
스무살이 넘은 이후로는 없었다.
물놀이에 내던져질 내 청춘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이호테우 해변도 그렇고, 17코스의 후반부 용두암 근처 또한 다양한 해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거리였다.
제주공항 근처로 가까이 갈수록 생활의 편리함을 부축이는 상업도시, 번화가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도두봉에 올라 얼마 남지 않은 길과, 걸어닿지 못할 바다를 함께 눈에 담았다.
용두암 근처로 다다를 수록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정말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마을로 놀러오는 이웃주민에게 손을 흔들면 그 모습이 보이는 동물의 숲 게임을 떠올랐다.
닌텐도를 포기하고, 제주도행 비행기와 숙소를 결제 했던게 백번 잘한일이라고 느낀다.
서핑을 하고, 분위기좋은 카페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거나, 독특한펍에 가서 수제맥주를 마시고 동문시장에서 다양한 제주 특산물, 공산품을 쇼핑하면 좋을 코스를 걸었다.
그저 지나치며 보내야 할 세상사에 무심한 나그네가 된 것 같다.
그렇게 걸어야 할 코스인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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