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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12.깔딱깔딱
올레18-1코스(추자도올레)
by
사막물고기
Apr 27. 2020
우비를 입고 올레길을 걸었던 날은 단 하루뿐,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ㆍ
저마다 사랑하는 날씨의 분위기가 따로 있겠지만
여행에서 '좋은날'이란 풍경이 잘 보일 수 있는 맑은날을 통칭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ㆍ
럭키를 외치고 싶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ㆍ
전날 한라산 등반으로 체력의 밑바닥을 들켜버린 후, 만만치 않다는 추자도 올레 코스를 연달아 가게 되었다ㆍ
집에서는 바닥 한번 닦는것도,빨래를 널고 개키는것도 느릿느릿 온갖 여유는 다 부리며 움직였지만, 여행지에서의 내모습은 알람이 울리기전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ㆍ
대체로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면 유독 부지런해진다는 유머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ㆍ
(외국사람이 본 한국인 특징이라는 내용이었다ㆍ)
나조차도 본래의 자아와, 여행용 자아가 따로 있는게 아닐까 의심이 되는바, 다른 사람들도 적게는 한번쯤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군대에 갔다오면 조금은 달라져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는게 남동생의 무례함을 참아내는 방법일때가 있었다ㆍ
하지만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여행지에서 그토록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내
모습도 원상복구 되는것은 마찬가지였다ㆍ
사람의 자기 본성과 생활습성은 늘리고 뒤틀어도 놀랍도록 강한 탄력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인것이다ㆍ
장소, 주변환경으로 인한 변화는 적응이라고 부르는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ㆍ
버스에서 간세 마그넷을 선물 받았다ㆍ
집에 돌아가면 냉장고에 붙여두고 제주에서의 바지런함을 매일 떠올릴 것이다ㆍ
제주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추자도에 도착했다ㆍ
올레길 코스 소개문에 추자올레 18.2km는 최상급의 난이도라고 되어 있었고
추자도 여행 또한 1박2일을 두고 천천히 둘러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고 한다ㆍ
걷기에 힘들고도 아름답다는 뜻인걸까?
9시30분 첫배를 타고 10시30분에 도착하여 4시30분 배를 타기까지가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ㆍ
추자올레길 완주에 목표를 두다보니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비경에 감탄하는것도 잠깐, 눈으로 휙 훝어보고 발길을 재촉했다ㆍ
봉골레산을 시작으로 추자등대,묵리고개로 이어지는 오름 고개들이 결코 쉽지 않았다ㆍ
오르막을 특히 잘 오르는 선생님도 힘들어하셨는데 이렇게 숨이 목구멍에서 깔딱깔딱 쉬어지는 코스를 본인은 깔딱고개라고 부른다 하셨다ㆍ
몇개의 깔딱고개를 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따라가보자고 등을 밀어주셨다ㆍ
오늘도 등산스틱을 빌려주셔서 맨몸으로 오르고 내린것보단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지만 힘든건 매한가지였다ㆍ
등에서,이마에서 땀이 축축하게 젖어갔다ㆍ
묵리 슈퍼에서 중간스템프를 찍고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추자항으로 회귀하기 위해 계속 걸었다ㆍ
나는 이곳에 추자도를 둘러보러 왔나, 등산레이스를 하려왔나
산길이 아닌 도로는 그늘 한점 없었고 볕은 어지럽고 지치게 했다ㆍ
좋게보면 꼼꼼하다고 할 수 있지만 때때로 편집증과 집착을 보일때가 있다ㆍ
올레 스템프도 코스별로 꼭 완주를 하고 찍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ㆍ
누구도 등떠밀지 않는, 나만이 고집하는 이상한 오기ㆍ
스템프에 꽂혀버린 종주마처럼 쉬익쉬익 숨을 거치게 몰아쉬며 앞만보고 오다가 참을만했던 고관절 통증이 다시 시작되면서 주저앉아버렸다ㆍ
예초포구를 2시 이전까지 지나야 배출발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다고 했었다ㆍ
1시50분쯤 포구에 도착했지만 그 이상 갈 용기와 힘이 없었다ㆍ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ㆍ
슈퍼에서 더위사냥 아이스크림과 간단점심을 먹었고 다른분들의 무사복귀를 빌어주기로 했다ㆍ
버스를 기다리며 만난 동네 할아버지는 추자도가 창살없는 감옥이라고 했다ㆍ
타지에서 며칠 놀러온 사람들이 경치좋고, 평화로운곳에 산다고 말하는 소리가 싫으셨던것 같다ㆍ
굽이치는 고개를 버스를 타고 천천히 구경하는것도 나쁘지 않았다ㆍ
아니, 오히려 제주에서의 내 역할은 경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ㆍ
버스정류장 경계없이 이쯤에서 내리겠다고 말하는 할머님과 할머니를 마중나온 짤똥한 강아지의 뒷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ㆍ
나의 속도를 찾아가자는 다짐이 변질되고 있었음을 느낀다ㆍ
다수가 카메라를 들고 찍는 장소, 스템프를 찍겠다고 길게 늘어선 줄에서 내가 기쁨을 찾을곳이 있을까?
할머니와 흰둥이 강아지를 깊이 기억해야겠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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