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신 내려오고 싶지 않은 산

한라산 백록담 성판악코스

by 사막물고기

일요일은 올레길 여정을 잠시 멈추고, 제주의 관광명소를 다녀보고 있다.


지난주 한라산 윗세오름-영실코스 등반을 하려했으나 우천으로 입산금지가 되어 숙소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번주는 지난주에 대한 사과라도 하려는듯, 배로 쾌청하고 맑았다.

각자, 본인 체력이 가장 좋다고 자부하는 '건강전성기' 시절들이 있다.


엄마는 40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 등산을 하면서 체력을 키웠다.


그에 비해 난 늘 체력에 자신이 없었다.


보통 대부분의 날들이 피곤했지만 20대 중반쯤, 자전거로 30키로쯤은 거뜬히 타던 시절이 그나마 건강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무튼, 요즘, 최근에는 바닥을 기고 있는 체력에 허덕이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한라산을 등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이 전혀 없었다.

같은 숙소를 쓰며, 올레길을 걷는 중인 동행자들을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선생님들은 성판악코스는 완만히 올라가기 때문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밑바닥의 체력으로 홧김에 올레길을 완주해보이겠다고 오기를 부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이 곳 선생님들은 대부분 장기적인 계획과 체력을 어느정도 증진시키고 도전하시는 분들임을 잠시 간과 했었다.

건강한 삶, 자연과의 교감을 토대로한 생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이 분들이 말씀하시는 '오를만하다'를 그대로 받아들인 후 큰코를 다치게 된 초보 등산러의 넋두리였다.

아침 7시 30분부터 성판악 탐방안내소를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오후 3시 30분까지 원점으로 회귀해야 하는 코스였다.


8시간이면 백록담까지 충분히 다녀오겠지라고 생각했던건 꽤 힘들긴 했으나,


올라가는 길은 버틸만 했고, 예상시간보다 빨리 정상에 도착했었기 때문이다.

몸은 무겁고, 외출자체를 귀찮아하지만 등산은 솔찬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예 산을 안다녀본 사람은 아니었는데, 한라산은 내륙 유명산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 나무들이 자생하는 곳이라 산이라면 그려지는 익숙한 푸름의 이미지와는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경사가 급하진 않지만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구간별로 군집하고 있는 나무와 식물이 확연히 달라, 다른 방, 다른 세상을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굽이 굽이 인생길을 만들어냈지만 한라산 성판악 코스는 백록담까지 내리막은 없었다.


정상까지 계속 올라가야 하는 삶이라면 정상 이후에는 쭉 내리막길만이 있다.

나이가 차면서 점점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이 낫다고 느낀다.


두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내리막은 무릎이 아프다는 거였고,


둘째는 위에 이유를 느낄때쯤부터는 비우고, 내려 놓는 삶에 더 익숙해져야 한다는 서글픔을 느껴서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는 그나마 완만한 오르막이었다면 이후부터 정상 백록담까지는 급격한 경사가 시작되었다.

한라산은 돌이 참 많았는데, 올라갈땐 돌을 추진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어서, 평탄한 데크길 보다 (이상하게 올라가는 데크길은 다리를 무겁게 했다) 다리에 힘을 주입할 수 있었는데


내리막길에서 마주치는 돌은 저주스러웠다.


발목, 무릎 연골들을 모두 갈아버리겠다고 작정이라도 한것처럼 징그럽게도 많다고 느껴졌다.

같은 길을 올라갔고 그대로 다시 돌아왔건만, 내리막의 한라산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산이 되어 있었다.


이는 내 몸이 한라산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증거이기도 했다.

왼쪽 고관절이 제주도에 왔을 때부터 계속 아팠다.


이런 저런 스트레칭을 시도하고 있지만 풀리는건 잠깐 뿐이고, 밤잠을 설치는 이유도 고관절이 저릿저릿하게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런 주제에 등산을 하기 위한 만발의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등산화에 스틱도 없이 올라보겠다고 하니, 선생님 한분이 스틱은 꼭 있어야 한다며 한쪽을 나눠 주셨다.

그리고 이 등산스틱이 생명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백록담은 물이 바짝 말라 있었고, ' 아 그냥 분화구네 ' 라고 느낄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백록담 앞 정상 비석 앞에서 줄을 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이 높은 산을 올라왔다, 백록담 앞에 서있다에 대한 사진 인증서를 남기는 사람들의 얼굴은 해맑고 뿌듯함에 가득차 있었다.


함께 오른 선생님들도 ' 아 기특해 내 자신 ' 이라며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칭찬해주었다.

정상까지의 여정은 그래도 달콤한 편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고관절 통증으로 사타구니부터 시작해 무릎, 발목, 발가락 아프지 않은 하반신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수천의 돌무더기를 지나다가 발목이 꺾일까봐 걱정도 되었다.


잘근 잘근 천천히 내딛는 걸음은 앞서가는 선생님들과 거리를 한참 벌렸다.


그렇게 먼저 다 내려가신줄 알았던 선생님 두분은 속발 대피소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계셨다.


함께 천천히 가자며, 앞장선 두분은 내가 너무 쳐지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며 끌어주셨다.


스틱 양쪽을 다 사용해보라며 나머지 한쪽도 빌려주셨다.


그 배려가 너무 따뜻해서 울었고, 내려가는 내내 몸이 아파서 또 울었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쉬운쪽으로만 살고 싶어 포기가 일상인 가난한 오기만이 있었고, 제 몸하나 건강히 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였다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기다려줄 수 있었을까.


아니, 빨리 도착하고 싶어 혼자 가기 바빴을거다.


결과적으로 선생님들이 내가 너무 뒤쳐지지 않게 속도를 재촉해주셨기 때문에 3시 30분 안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누군가, 그저 같은 길을 며칠 동안 같이 한 동행자일뿐인데도 포기하지 않도록 끌어주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말라버린 백록담에서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과 한라산의 내리막길에서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투명하고도 가혹한 등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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