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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19코스(조천-김녕올레)

by 사막물고기

어느덧 제주에 온지 14일째였다.


그동안의 생활을 짧게 정리하면, 먹고, 걷고, 일과정리를 반복하는 것이다.


집에서 하지 않던 반복사이클을 제주에서 하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도를 닦는 기분이 들때도 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믿음과 신앙심이라곤 전무한 내가 제주에서만이라도 스스로의 규칙적인 일과를 믿어주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추자도와 한라산을 다녀왔더니 19.4km라는 거리도 그 두곳보다는 힘들겠어?라는 배짱이 생겼다.


몸을 힘들게 하는건 단순히 많은 키로미터수가 아니라, 자신의 체력과 걷는 길의 지형 상태 등 다양한 변수로 어려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시작되는 황금연휴를 맞아, 숙소에도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조식도 빨리 빨리 먹고 자리를 비켜야 했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더라면, 석가탄신일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나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거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 쉬다보면 휴일의 달콤했던 기억들은 아득해진다.

조천 만세동산에서 오늘도 무사히, 안전히, 고관절은 좀 덜아프게 해달라고 짧은 바람을 속으로 외치고 걷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쓴 돌하르방이 인상적이었다.


해외여행 대신 제주행을 택한 사람들이 많은지라, 얼마나 많은 인파가 제주로 올 지 두렵고도 반가운 표정이 마스크안에 숨겨져 있는것만 같았다.


관곶을 지나 신흥리 백사장으로 접어들면서,


어떻게 걸어야 왼쪽 고관절과 다리가 덜 아플지 많은 모의시험 끝에 해답을 찾게 된 것 같았다.


걸음 보폭을 작게 줄여 잘잘한 걸음으로 걸으니 통증은 완화되었다.

질병은 한번에 완치되지 않을때가 많다.

따라서 몸과 함께 붙여사는 동안 '참을만한 정도'까지 방법을 찾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떻게 또 말썽을 부릴지는 알 수 없지만.


함덕 해수욕장에는 바다를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즐기는 인파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편의시설, 레저공간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이름난 해변에서 조성되는 환경은 대게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지나온 제주의 해변과 앞으로 가게 될 해변의 각 특징을 잘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우봉을 올라가는 고개가 바짝 힘들었고 그 뒤부터는 고요한 숨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올레길을 지나다보면, 정돈된 묘비와 비석을 세운 무덤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밭과 밭사이 돌담 정도로 경계지은 무덤도 많이 볼 수 있다.


생업을 꾸려가는 공간에 무덤은 가까이 있고,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하게 느껴지는건, 제주4.3사건의 억울한 희생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늘 가까이서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의 방처럼 느껴졌다.

올레길 초반부터 몸이 따라주지 않아 고전했었다.


내가 계속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나처럼 의지박약인 인간이 30일을 버틸 수 있을까, 중간에 한코스라도 어그러지면 계획이 모두 틀어지는건데 그땐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 끊임없는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이제 슬슬, 내 몸 사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다.


발바닥 물집이 같은 자리에 두번정도 났다가 사라지면 고통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보폭은 작고 빠르게 걸어야 뒤쳐지지 않는다는 둥


크고 작은 나만의 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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