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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17. 흐린날의 섬한바퀴
올레1-1코스(우도올레)
by
사막물고기
May 2. 2020
제주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았다.
근 2주를 기세좋은 땡볕에서 걷다보니, 걸음이 불편할 정도가 아닌 비는 반가웠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비소식은 불안함을 동반한다.
배가 뜰지, 비행기가 뜰지, 관광지가 운영을 할지 등등, 다양한 변수가 날씨와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우도로 향하는 배만 오간다면, 날씨는 아무래도 좋았다.
흑빛에 가까운 바다를 가르고, 배가 나아가는 웅장함도 먹구름이 있기에 비극의 서막처럼 느끼며 이런 저런 상상의 살을 덧붙이며 재미를 느낀다.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와의 연애가 끝나던날, 해진은 함께 가기로 한, 제주도와 우도행의 두장의 예매된 티켓 중 한장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둘이 함께 왔다면,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타던, 전기차를 빌려타던 둘이 꼭 붙어 앉을 탈거리를 골랐겠지만 홀로된 그녀는, 타박 타박 걸음을 옮긴다.
부비적 거리는 연인들이 함께 타고 가다, 서다 하며 돌아보는 해안가는 번잡하고, 그들의 단란함을 어여삐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던지라 해진은 민가로, 밭담길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이런곳까지 전기차가 들어올만한 곳이 아닐텐데 들어와 주차가 되어 있어, 의아해 하던 찰나, 근처 운전자들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남자는 어깨 동무를 하고 뺨을 부비면서 담벼락 앞에서 사진을 찍는 포즈를 잡는다.
카메라의 렌즈를 반달이 된 눈으로 들여다 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익숙하다.
한때 해진의 사람이었던 그, 그의 뒷모습이었다
우도의 치정 멜로를 상상하며, 걸었다.
볕이 따갑지 않아, 흐린 날이 반갑긴 했지만, 몸도 마음도 잔뜩 물기를 머금은 듯 가라앉아 걷는 속도가 쉬이 빨라지지 않았다.
4년전의 제주 홀로 여행에서 다음에 제주에 올때는 꼭 혼자가 아닌 둘이 되어 혹은 셋 넷이 되어 함께 오리라 생각했던 팔할의 이유는 우도 때문이었다.
탈거리, 먹거리, 체험거리가 많은 이 섬에 다시 오게 된다면, 한번도 침울한적 없었던것 처럼 붕붕 뜨는 기분과 흥으로 놀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많은 날들을 홀로 보냈고, 이제는 막연히 혼자가 아님을 바라는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앞으로도 홀로 지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고 있다.
기대할 여지가 없는 미래의 내모습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차분하고 얌전하고,착하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우도는 제 집 담벼락에 올라 망루를 지키는것 같은 용맹한 강아지들이 많았다.
대체로, 흰둥이들이 온순한 편이었고 누렁이들은 목청이 좋고 사나운 편이었다.
우도 올레길은 해안도로만으로 둘러본다면 보지 못했을 마을의 구석 구석 생김새를 들여다보며 걸을 수 있었다.
해빈 해수욕장은 맑은 날이었다면 눈부시게 빛났을 백사장과, 연한 초록빛의 바다가 드넓게 깔려 있었다.
해수욕장 맞은편에는 해녀분들이 갓잡아 올린 해산물로 차려주는 음식점과, 오션뷰를 창문가득히 볼 수 있는 펜션이 길게 잡리 잡고 있었다.
산물통 입구와 파평윤씨공원을 지나면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도착하는데, 이쪽 해변은 카페, 소품샵, 카약, 보트타기 등으로 꾸려진 젊은 감성 테마 카페 느낌이 났다.
제주 각각의 이름으로 붙여진 해수욕장, 바다가 모두 느낌이 다르고, 떠오르는 대표 경치가 다르게 저장되어 있듯이 우도 안에서도 해변마다 개성을 자랑하고 있다.
나 좀 만지고 가라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흰둥이에게 한참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뒤쳐지게 되었고, 이미 늦어버린 만큼 천천히 즐기고 가자는 베짱이 생겼다.
땅콩 아이스크림은 꼭 먹고 가야지 했는데 카페까지 들러, 자리에 앉아 먹을 줄은 몰랐다.
느리게 가자는 베짱이 만들어낸 여유로 하고수동 해수욕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땅콩이 특산물이라, 땅콩 아이스크림, 땅콩빵,땅콩 초콜릿 등은 우도에서 먹어볼만한 음식으로 이해가가지만 중국집은 왜 이리 많았는지 모르겠다.
천진항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 짬뽕을 골고루 먹고 배가 그득하여 윗배를 두들기며 이것들을 소화시키려면 우도를 다시 한번 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걸으며 비워내고, 가벼워지고, 살짝 빈곤해진 떠돌이 김삿갓 느낌도 좋지만,
소맥 한잔과 중식을 배부르게 먹고 몽롱한 기분으로 성산항으로 돌아오며 멀어지는 우도를 쳐다보는 것도 꽤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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