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더위와 인파

올레1코스(시흥-광치기올레)

by 사막물고기

상당히 건조하고 더울것이란 일기예보를 보면서, 슬슬 본격적인 더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각오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지고 온 옷 대부분이 바람이 많고, 온도변화가 극심한 제주를 생각하며 얇은 기모가 든 옷들이 많아서, 지금은 쓸모 없는 옷들이 되어버렸다.


얇은 긴팔 티 검정색과 흰색을 번갈아가면서 돌려 입는 중이다.


하의는 신축성 좋은 등산바지 한벌을 매일 빨아 입으면서 버티고 있는데, 이 바지도 기모가 들어 있다.


다행히도 (?) 사진찍히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풍경속에 예쁘게 나오고 싶은 욕심은 없는 편이지만, 쪽빛 바다 앞에서, 관광지에서 멋있게 차려 입은 사람들을 보면 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얇은 끈 나시에 빨갛게 익은 어깨를 보면, 멋이고 뭐고 좀 덜 답답하게 꽁꽁싸맬 수 있는 옷이면 최고라며 지금의 복장에서 햇빛을 더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것으로 돌아간다.

올레 1코스, 올레길의 출발점이자 나의 중반부 여정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같은 숙소를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새로 들어왔다.


실로 내마음은 무관심하기 그지 없었지만, 앞에서 뒤에서 한번씩 보여지는 사람들만의 특징들로 새로운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봉을 한껏 띄운 모습이 꼭닮은 세명, 길가에 핀 초목에 관심이 많은 아주머니들의 끝없는 수다 등등)

1코스는 초반, 말미오름과 알오름을 연달아 오른다.


오름마다 난이도와 높이는 다르지만, 올라서면 오르기 잘했다는 생각엔 한번도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오름에 올랐을 때 보일 풍광과, 바람의 세기, 온기를 상상하며 힘차게 오를 수 있었다.

사람에게 품는 기대감과, 친밀함이 오름에 오르는것 처럼 비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힘차게 다가서면, 말을 걸어주어 고맙다고, 멋진 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친절하고도 확실한 관계 말이다.


오름에서 내려와 종달리를 지나면, 내가 두 손을 높이 들었을 때 천장을 콕 찍을것 같은 나즈막한 집들이 들어찬 마을을 지나가게 된다.

두세명 들어가면 꽉 찰것 같은 카페, 서점이 많은 마을이었다.


작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옮겨다니면서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싶었다.


길위의 방랑자가 되면, 머무는 사람이 부럽고


머무는 사람의 시선에선 창밖에 지나가는 방랑자들이 부러울 것이다.

절대 만족이라곤 모를것 같은게 사람이다가, 그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를 잘 지켜가는것도 사람인 것이다.


한없이 제 위치를 쳐다보고, 돌아보다가 위는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되버린게 아닐까.


나의 30대는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생의 흐름이었다고, 그래서 고개는 찬찬히 따라 숙여졌다고 생각한다.

걸으면서, 한번씩 활짝 얼굴이 펴지는 순간이 동네 강아지들을 만날때이다.


펜션앞을 지키는 순둥순둥한 백구도 있었고,

성산포구쪽에서 바람을 느끼며 사색에 젖어있는 강아지도 있었다.

광치기 해변쪽을 지날때는 까만눈동자만큼 새까만 강아지를 보았다.


4년전 같은 곳을 지나며, 봤었던 새끼 강아지들이 떠올랐다.


같은 강아지였으면 좋겠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들에게 시선과 마음이 가는건, 13년간 살다간 우리 동글이에게 한번도 바다를 보여주지 못한 미안함이 공존해서다.


나의 강아지가 바다를 봤다면, 함께 해안가를 걸었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떠난지 1년이 지났어도, 늘 보고싶고 그립다.

나의 작은 시츄는 노란색이 참 잘 어울렸었다.


제주에 잘방 잘방 널린 유채꽃을 보면 또 함께 보지 못했던 시간이 야속해서, 내 자신이 미워졌다.

이토록 순수하고 착했던 생명체에게 못해준 기억만 가득해서, 점점 가족도, 사람도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잊어야 할 기억은 잊어야, 비워내야 같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수 있을것이다.

매일 걸으며, 비슷하면서도 1m도 같지 않은 이 길을 새로운 기억들로 함께 채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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