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따끈한 바람

올레21코스(하도-종달올레)+용눈이오름

by 사막물고기

전날 오독오독 씹어먹었던 닭똥집과, 치킨 덕분에 일어날때부터 몸이 한껏 무거웠다.


배고픔을 끌어안고 잠에 들기까지는 꽤 힘들지만, 가뿐한 아침을 만들어줄 것이고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면 다음날을 개운하게 시작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답은 뻔히 보이지만, 종종 배고픔에 백기를 드는 날도 많을 것이다.


허기를 달래는 밤과, 참아내는 밤을 오가며 눈을 뜰 아침이 어쨌든 건강한 숨을 내쉬며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섬세하게 건강을 지키려는 다짐과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레길을 걸으며 매일 2만보이상의 걸음을 채워나가며 제주의 자연을 천천히 느낄 수 있는 요즘이 참 감사하다.


그래서, 이제 절반이 채 남지 않은 나날이 아쉬워지고 있다.


제주에 온지 며칠째로 날을 세기 시작하여 어제부터는 남은 일자를 세어보고 있다.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시작하여 종달바당으로 종료되는 11.3km의 21코스 올레길을 걸었다.

1코스부터 시작했다면 오늘의 21코스가 전체 올레길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11코스부터 걸었기 때문에 10-1 가파도 코스를 마지막으로 끝날 예정이다.


그날이 까마득 한 것 같다가도 이제는 끝점이 조금씩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걸어서 제주 반바퀴 정도는 돈 지점에 서있다.


걷는 순간 순간 고통과 나약한 몸의 한계에 눈물났던 적도 있었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소중한 안식처라고 믿었던 집에서 견딜 수 없을것 같은 고통에 홧김에 뛰쳐나와 길에 섰지만,


한달여간을 집을 지키지 않아도, 나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가족이었다.


각자, 알아서 잘 살아주는 가족들이 일정부분 도와주었기에 별 탈 없이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걸어서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토끼섬은 사진으로 찍으니 한참이나 멀어보였다.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이 보이는 주변 해안도로에는 토끼를 모티브로 한, 카페와 펜션, 음식점을 볼 수 있다.

한번씩 지금까지 걸어본 올레길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딘지,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디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답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정확하게 한 곳을 찝어 낼 수가 없었는데 오늘 하도 해수욕장과 종달바당을 걸으면서 21코스의 구좌읍 해변과 경치가 품고 싶은 경치가 되어 있었다.

손을 바닷물에 넣어도 투명하게 전부 비춰보일 것이며, 적당히 갈갈한 모래와 따뜻한 바람이 계속 등을 밀어주는 평화로운 하도 해수욕장이었다.

바당 올레길을 걷고 지미봉 입구쪽으로 접어드는 내륙 올레길은 눈앞에 푸른 산이 시선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숨이 몇번씩 꼴깍꼴깍 넘어갈 것 같은 지미봉 정상에 오른 보상은 제주도 전체를 한눈에, 가깝게 내려다 볼 수 있었다.

21코스를 마무리 하고, 용눈이 오름에도 올라갔다.

완만한 오름의 둔턱을 천천히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방으로 펼쳐지는 푸름의 융단,갈빛 조각으로 수놓은 듯한, 갈대,대지가 어우러진 장관을 보여준다.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고도 하고,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하여 용눈이 오름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땐 무척 거센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닥친다.


풍욕샤워를 한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그렇다면 이 바람의 샤워줄기는 한없이 드세고 따뜻한 온욕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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