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코스부터 걷기 시작해, 마지막 10-1 가파도 코스를 걸으면 올레길 완주 증서를 받을 수 있다.
10-1코스를 갔다와, 올레 여행자센터까지 가기에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 일요일 자유시간을 미리 10-1코스 가파도 올레에 가 스템프를 찍는 것으로 보내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파도로 출발하는 모슬포 운진항까지 1시간 30분정도 걸리고, 버스를 이용한다면 더 오래 걸릴것은 뻔하기 때문에, 함께 승용차로 갈 수 있는 인원이 생겼다는게 무엇보다 기뻤다.
함께 가파도로 가는 여행자 두분은 나보다 나이가 훨씬 지긋하신 선생님들로, 가파도엔 이미 다녀와봤으나 이맘때쯤의 가파도가 궁금하여 한번 더 방문하시는 분들이었다.
오늘도 날씨가 흐렸다.
아침 9시 여객선은 기상악화로 결항이었고, 내가 타고자한 11시 여객선은 제발 정상 운행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비행기가 뜨고, 배가 뜨는것에는 비가 내리는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개와 구름으로 시야확보에 문제가 없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 (내이름) 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 라고 타박 아닌 타박을 들었는데 동년배, 직장 동료에게 들었다면 나를 무시하는게 아닐까, 쉽게 보는게 아닐까 등등 온갖 확대해석으로 지쳤을 법이 뻔한 말이었지만, 나를 잘 모르는 어른에게 들으니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는 말이 되었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얼마나 곤두서있었는지, 날 선 망상과 오해로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었는지 깨달았던 지점이었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길다고 해서,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 또한 마찬가지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었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바닥 깊숙히 이해할 수 없어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면 만난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 관대해지는 것처럼 기대를 낮추고, 낯선 긴장을 유지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가파도에 도착해, 간세 이정표를 찾아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4년전 가파도에 늦은 배시간으로 들어온 나머지 하룻밤을 자고, 제주도로 나갔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그때의 가파도와 지금의 가파도가 나란히 기억의 도마에 올라 비교되고 있었는데,
정식 민박도, 숙박도 아닌 집에서 잠을 잤던것과 다르게 지금의 가파도는 게스트 하우스, 카페, 음식점이 제법 스산하지 않게 예쁜 모양들을 갖추고 있었다.
가파도에서 자고 나가게 되었다는 말을 엄마에게 했을 때, 우도나 추자도도 아닌 웬 가파도에서 잠을 자냐, 볼것도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을 했었다.
그땐, 햇빛을 받으며 찬란한 녹색을 발산하는 청보리 외에 해가지면 정말 볼것이 없었기 때문에 집을 그리워하며 훌쩍 거렸으나,
지금의 가파도라면 하룻밤 묵어도 볼만한 것들이 좀 있다고 받아칠 수 있을것 같다.
청보리 소프트 아이스크림, 청보리 핫도그 등등 청보리가 가파도를 대표하고 있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 이름으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또, 가파도는 제주에서 가장 나지막한 섬으로, 날이 좋으면 한라산,산방산, 송악산 등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고 하나, 오늘은 짙은 물안개와 쿰쿰한 먹구름만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날이 좋으면 좋은대로, 궂은 날은 그런대로 모든 여행의 시간과 날씨의 합은 새로운 인연이 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일정을 틀어, 가파도에 오게 된것도, 낯선 여행자 두명과 동승하게 된 것도, 물기 잔뜩 머금은 하늘 아래 낮은 섬을 걷는 것도, 오늘의 내 선택과 날씨가 만들어준 시간일 것이다.
안락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나는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농담 조금 진담 꽤 많이의 비율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와 떠돌아 다닐 적엔 그 누구보다 고생 앞에서 용감하고, 참을성과 인내심이 발휘되는 기특한 모습을 느끼곤 한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모험담을 전해들으며, 그들을 동경하고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부글거릴 때면, 어쩌면 난 집나오기까지가 힘든 사람이지, 나오면 고생을 즐 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