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 수술을 한지는 대략 6-7년 정도 된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한 것은 확실한데, 정확한 연도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전의 다이어리들을 찾아보면 알아낼 수는 있겠으나, 수술 날짜가 중요한 부분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란 의심, 시력기능 저하에 대한 걱정 등에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명동 어느 안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라식수술 전 여러 검사를 하게 되는데, 각막두께가 유달리 두껍다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으나,
' 두 번 깎고도 남을 양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안전한 수술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감과 그래도 어쩐지 이상한 소리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수술 직후 눈이 따끔 거려 눈꺼풀에 힘을주고 부릅뜰 수 는 없었지만 어영 부영 반만 뜬 채로 다닐 만하였다.
그래서 함께 따라와준 엄마와 명동 시내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부터 정상생활은 가능했고, 근 십여 년을 넘게 코에 걸쳐 있던 안경이 사라지니 시원섭섭함 중에 미칠듯한 시원함과 쾌감이 느껴졌다.
안경이 눌릴까 봐 한쪽 팔을 괴고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일도, 그러다 팔이 저린 일도, 목욕탕에 가면 희멀건 형체 덩어리가 아니라 또렷한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도
장단점은 없었다.
오직 장점만이 가득한 안경없는 일상생활이었다.
안경 다리 선이 지나는 부위만 햇빛에 타지 않아 하얗게 그어진 선들도 다른 피부톤으로 금세 맞춰졌다.
안구건조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인공눈물을 넣어 주어야 한다는 안과의 지침이 있었지만,
실감나진 않았다.
'나중에라도'라는 단서를 달아 말해주었으면 관리했었을까? 모르겠다.
당장에 느껴지지 않는 바로 미리 예방차원에서 행하는 것들은 꽤 쉽지 않다.
그렇게 4-5년은 잘 지냈다.
의학기술에 감탄하며, 내 인생에서 잘 받은 수술임을 확신하며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이건 다이어리를 찾아봐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눈이 뻑뻑하면서 건조하고 시리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인공눈물이 없으면 밤새 자고 일어난 뒤 눈을 뜨기 힘들었다.
' 마이 아이즈!!!'를 외치며 머리켠에는 항상 인공눈물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눈에 적셔두고 눈을 떠야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야간의 빛 번짐 현상은 올 수 있다고 미리 경고받았지만 그 부분도 역시 심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시력관리에 실패한 시기가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낮밤이 뒤바뀐 때에 밤새 이불속에 숨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엄마가 계속 경고했었다.
깜깜한 곳에서 핸드폰 보는 게 얼마나 눈이 나빠지는지 아느냐며.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 이랬다고, 시력이 좋아지면 선명한 세상에 길들여져 이미 견뎌온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 어둠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짐짓 모른 척을 한다.
반대로 초롱 초롱 했던 시야에 한두 겹 흐린 장막이 끼기 시작해도 기후변화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수술 후 초반 경보다 시력이 떨어진 것은 확실했지만 정확히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모르겠고, 그 이전에 보이던 것들이 흐리게 보일 뿐 수술 전처럼 아예 안 보이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조금 불편하다고만 느꼈다.
어느 날 눈 떠보니 시력이 번뜩 뜨였다가 차츰 원래 시력으로 되돌아가는 약속이 정해져 있었던 것 마냥 굴었다.
큰 돈을 주고 수술을 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정과 체념으로 눈을 길들여 나갔다.
6년 만에 수술했던 안과에 다시 방문했다.
수술 직후 교정시력 1.0에서 0.4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자연적 노화증세도 약간은 있다고 한다.
세월의 서글픔을 집어주는 말들에도 이젠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그래, 나는 마치 다 산 것처럼 최종 선고를 받아둔 사람처럼 그땐 모든 일을 처연히 받아 삼켰다.
'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겁니다 '라는 선고 외엔 어떤 말도 괜찮았다.
당시 라식 수술 부작용에 대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종종 방영되어 겁이 났었나 보다.
안압이 높아져 있어, 안압을 낮추는 안약으로 약간의 시력 회복 효과를 기대해보자고 했다.
2주 정도 안압 약을 넣었고 0.1-2 정도 올라가는 교정 효과가 있긴 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약 0.4의 시력으로.
보이던 게 잘 안 보이는 기능적 문제 말고 수상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길을 잘 못 찾는 일명 길치이고, 길치 중에서도 아주 악명 높은 악질 길치인데
그날은 좀 이상했고 억울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회사 퇴근 후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약속 장소에서 보자라고 정한 뒤 자전거를 타고 갔다.
평소 익숙한 길이고,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한들 되돌아 가는 것도 짧은 동네 약속이었다.
이쯤 하면 나와야 될 도착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전화가 왔고, 대체 어느 곳으로 가버렸길래 아직도 도착하지 않냐고 타박을 했다.
있던 곳의 위치를 찍어 보내주었고, 아예 동이 달라져버린 약속 장소와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뭣에 홀린 것 마냥 반대편으로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니
새삼 자전거 주행속도와, 대책 없는 방향 선택에 놀랐던 날이었다.
내가 이정표를 봤었던가?
분명 인덕원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그 방향으로 갔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새벽 출근을 2주씩 하고 있다.
7시까지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6시 30분 정도 출발하는데, 해가 빨리 뜨는 계절기에는 '새벽'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래도 '아침'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절기에 접어드는 요즘은 아침 6시 30분이면 캄캄한 밤과 새벽의 중간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다.
후덥지근한 새벽 날이었다.
2-3분이라도 더 일찍 도착하여 느긋하게 커피를 타 먹으리라는 욕심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아가고 있었다.
안장에 올라타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부딪치지 말고 피해야 될 사물처럼 인식될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관찰해보면 전화를 하는 사람, 나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 택시를 타는 사람, 등등등
각자 움직임을 갖고 있었다.
안장에 올라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 이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면서 회사에 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시커먼 점으로 바뀌었다.
아직 밝지 않은 새벽이니까 원래 이렇게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보였어야 되는 게 맞았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사람들이 '점' 같은 원형으로 보였던 건지, 어두웠기 때문에 그저 안 보였던 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글쎄, 그게 뭐였었지? 싶어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바로 지나쳐온 아주머니 같았던 사람도, 도로 위 자동차도 없었다.
깨끗하게 잡아먹고 모습을 감춘 먹깨비의 뒷자리를 이제 막 마주한 순간에 더이상 믿지못할 눈을 가진 나만 홀로 던져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