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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증후군의 제주표류기
25. 안개
차귀도와 금악오름
by
사막물고기
May 10. 2020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머리가 무거워져 올 때 틈틈이 전자책을 본다ㆍ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를 그렇게 읽었고 똑 떨어지게 표현하기 힘든 나와 비슷한 성정들의 인물이 전부 그 책속에서 숨쉬고 있었다ㆍ
그래서, 애틋하면서도 답답했다ㆍ
그들 곁을 지켜주었거나 마음을 토닥거려준 다른 인물들이 내 곁에도 있어줬으면 싶어 조금은 울고 싶어졌다ㆍ
한지와 영주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들, 쇼코의 내면 문제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성장하고,좌절하는 소유, 등등 마음의 그늘을 나누며 형성되는 둘만의 세계가 집중된 단편들에 깊이 빨려들어갔다ㆍ
나는 형편없이 쉽게 지치고 사람을 숨막혀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한뼘 정도만 나를 더 이해하고 너그러울수 있는 사람과, 그렇게 둘만의 세계에서 지낼수 있기를 아직도 바라는 중이리라ㆍ
몽롱한 쇼코의 미소 잔상이 가시지 않은채 차귀도에 도착했다ㆍ
차귀도는 제주 고산리 당산봉 서쪽 해안에 위치한 무인도로 죽도,와도,지실이섬 등 세개의 섬과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ㆍ
죽도가 본섬이고 나머지는 부속섬이다ㆍ
부속섬과 주변 기암괴석이 '어떻게 저런 거대한 절경과, 뭔가의 모양으로 바다를 뚫고 솟아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감탄사로 터져나온다ㆍ
지금은 무인도지만 1970년대 말까지는 몇가구가 살았고 세계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선정되어 있다ㆍ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라고 하니 황망하고 공허함이 느껴지지만 섬의 주체가 자연으로 돌아가면서부터 낚시꾼, 관광객 등등 드나드는 사람은 더 많아졌을것이라 생각된다ㆍ
곱게 조성된 산책로는 등대를 거쳐 정상까지 오르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게끔 야자매트가 깔려 있다ㆍ
저번주 인간극장 TV프로그램에서는 다시 무인도(황도)로 돌아간 사람에 대해 방송되었는데 집터의 일부 흔적만 남은 차귀도를 보면서 그 분이 떠올랐다ㆍ
월등히 독립적이고 불편함의 미학을 파고들 수 있는 사람, 내 기준에서는 기인처럼 느껴졌다ㆍ
산책로에 점처럼 박혀 있는 사람을 지우고 차귀도에 홀로 남은 나를 상상해본다ㆍ
지금도 남들만큼 살지 못해 불안해하면서 남들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다를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내 불안과 조급함을 한번씩 털어내려 가끔 찾던 바다는 매일 마주할적엔 불안과 공포를 실어다 주는 바다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마음의 섬하나는 몇번씩 허물어지고 다시 솟아난다ㆍ
차귀도를 나와서 금악오름을 올라갔다ㆍ
숲길을 따라 몇발자국 옮기기도 전에 안개가 자욱히 깔려 있었다ㆍ
습습한 풀향이 깊게 베이고 몇백년전의 숲으로 돌아가는 문을 나도 모르게 통과한것 같았다ㆍ
불투명하고 가는 실타래가 촘촘하게 나뭇가지 사이사이를 오가면서 장막을 드리우고 이 장막은 한조각도 잡히지 않는 신비함을 가지고 있었다ㆍ
오름 꼭대기에 다다르면 더 진하고 긴 안개를 느낄 수 있었다ㆍ
분화구 모양을 조금도 볼 수 없었지만 이처럼 풍성한 안개를 느꼈던적도 없었다ㆍ
오름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절경과, 오름의 기운을 안개로 느끼는 체험 중 선택권 없이 후자를 부여 받았다ㆍ
한치앞도 선명하지 않은게 꼭 나를 닮아 있었으며 내가 아직 꾸지 않은 꿈을 미리 들어가본 느낌이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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