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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un 03. 2020

A의 한구석

꽃이 선명하게, 싱싱하게 피어 있는것을 유독 인지하게 되는 날이 있다.


이름 없는 생명이 없듯, 나팔꽃을 닮은 그 꽃도 분명 이름이 있을 터인데 무지한 A는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고 그저 꽃아, 하고 부르며 입안으로 소리를 담았다.


어쩜 그렇게 생글생글한 자주빛을 지녔는지 모르겠다고 감탄한다.


이 꽃이 영원히 피어 있진 않을 것이다.


잎은 하나, 둘 푸름을 잃고 꽃잎도 고개를 떨구며 다음해를 기약한 영면에 들어갈 것이다.


피고 지고 또 다시 피어나다, 그 소생도 끝을 다할 날이 온다.


A는.


꽃의 마지막을 철이 끝나는 날로 볼것인지, 뿌리까지 완벽히 썪어 들어갔을때로 볼 것인지 작은 혼란이 일었다.


작년  관리만 잘해준다면 매년 예쁜 꽃을 피운다는 말을 듣고 A가 구입한 화초는 올해 꽃은 볼 수 없었지만 잎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변수야 많겠지만 잎도 꽃도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게  되었을때에야 꽃이 떠난게 맞을듯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찬란한 한철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 잎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반가움이 드는 A였다.


A 자신이 꽃이라면, 꽃일 수 있다면 한철이 마지막이고 싶었다.


모두가 삶을 축복하고 환희속에 살아야 할 의무는 없지 않을까.


허락과 답을 받고 태어난 생이 아니었다.


A가 가장 하고 싶은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고, A가 되고 싶은건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누구도 반겨하지 않는 이야깃거리를 품고 사는건 몇겁의 무거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것처럼 어둡고 텁텁한 느낌이었다.


사람이 수십년을 살 수 있게 된 건 이유가 있을것 같다가도 별 뜻없이 정착된 생체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하루를 보태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것이 A의 의지가 아닌데, A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며 두 손을 꼭 쥐었다 편 A의 손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씨앗 하나가 살을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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