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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y 25. 2020

동네 적응하기

이사온지는 오래 되었지만

제주에 있을 때 성산일출봉 해돋이를 보러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기사님은 매일 뜨는 해를 왜 굳이 보려는지, 그저 수 많은 길 중에 하나일 올레길을 왜 걷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부러 제주를 찾아온 사람은 매일 뜨는 해도, 길도, 특별해 보이지만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달을 거의 매일 광치기 해변과 일출봉 옆면을 보는 시간은 황홀했다.


얼마를 자주 보면 이 광경이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


무감각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것 같은데, 또 모를일이다.


훗날 섬은 갑갑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거주민이 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심드렁하고 건조한 투덜거림이 나의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을 돌아보게 했다.




멀리서도 찾아 온다는 수원 화성 행궁을 비롯해 몇몇 즐겨찾는 공원과 산책길이 있다.


집에서 툭 튕겨져 나와 부스럼을 흘리고 다녀도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인  '나와바리' 장소에 아름다움을 토로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마음 한편에는 '이깟게 뭐'라며 얕잡아 볼 수도 있을것 같았다.


어찌 저찌해서 새 직장을 구했고 오늘로서 출근 4일차에 접어들었다.


머나먼 서울 출퇴근길에서 벗어나 같은 수원권 안으로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버스로 40-50분을 타고 가는 거리라 그렇게까진 가깝다고 할 수 없지만 운동삼아 걷겠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집까지 걸어올만한 거리였다.


그래서 사일 중 이틀을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왔는데, 행궁길 일부를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기와를 얹은 담벼락을 비추고, 오가는 사람이 훌렁 빠져버린 어스름한 골목길이 이 곳을 지나는 여행자인듯한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2층을 가진 가게들의 간판과 행궁앞 조명탑의 불빛이 빛나면 슬금슬금 내려오기 시작한 노을이 한스푼 얹어지면서 오늘의 하늘 끝자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행궁쪽을 지나면 어둠이 내려 앉는다.


그제서야 서둘러 집으로 가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제주에서 한달을 살고 돌아온지 2주째 접어들었고 아직도 그 곳에서 걷고, 멍때리며 바다를 보고, 더 깊은 곳으로 가라 앉혀야 할 것 같았다.


수원으로 돌아온 며칠간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지, 우리집이 이곳이었는지, 생경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진짜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디며, 나의 동네라고 부를만한 곳이 이곳이 맞았는지, 저곳은 아니었는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채 마음이 어설프게 떠 있었다.


엄마라는 가족이 있는 곳,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곳이 수원 이 곳이었던걸 보면 나의 동네는 여기가 맞을것이다. 아마도.


저녁, 행궁 노을을 보면서 확인받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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