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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pr 11. 2020

가족의 어두운 이름

자존감도둑

대체 얼마나 위력적으로 겁을 주고, 폭언을 해야 정신을 차릴래라며 눈구멍을 쑤셔댈 듯 삿대질을 하며 위협해 오는 사람이 있다.


나의 대부분의 기억 속 눈앞을 아찔하게 만든 사람은 가족 중 한 명인 동생이다.


10대 땐 아직 어리고 철이 없으니까 조금만 참고 견뎌보자는 생각이었지만 어느 날 기적처럼 자신의 무지와, 잘못을 깨닫고 온화함을 얻게 되길 바라고 바랬었다.


또, 뾰족한 방법도 없어서 잠깐의 고성방가와 폭풍이 지나가길 얌전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무서울 것이 없는 망나니는 목청 큰 놈이 이긴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자기가 질러댄 소리에 분노를 차츰차츰 덧씌워 목청 데시벨로 천창을 뚫겠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 녀석의 화를 돋우고 턱 한쪽을 얻어맞은 이유는 엄마가 사둔 방울토마토를 내가 다 먹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저녁시간이 되어 그 녀석은 따로 라면을 끓여먹었고 나는 퇴근한 엄마가 참외를 깎아 달라고 해서 깎는 중이었다.


엄마는 방울토마토를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정확히 1주일 전에 사둔 그 토마토는 내가 다 먹었다고 하니 엄마는 서운함을 표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반복되는 고질적인 먹거리 분쟁이자 내 트라우마는 동생이 먹으면 먹을 수도 있는 식재료가 되지만 내가 먹으면 그러면 안 되는 걸로 되는지 모르겠다.

 라면 5개들이 1봉을 동생이 다 먹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방울토마토를 다 먹는 것은 그들이 먹을 먹거리를 내가 먼저 망쳐 놓은 것처럼 타박을 했고 동생과 엄마는 먹는 문제로 곧잘 나를 우습게 만드는 쌍두마차였다)


그때 과일이라곤 일체 입도 안 데는 동생이 집안의 모든 음식을 내가 거덜내고 있는 것처럼 놀려대길래  차분히 그동안 네가 먹어 사라진 식료품 몇 개를 나열해주었고 나는 네가 종종 먹고 싶어 하는 배달 음식비를 많이 냈으니 1절만 하라고 말한 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몇 분 채 되지 않아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입에 음식물을 가득 담고 전부 튀겨내며 " 닥치고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을 네가 뭔데 사람 눈치 보게 만드느냐 "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 욕설이 섞이 폭언을 하며 나를 때리겠다고 달려들었다.


말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건, 아 또 시작이구나 지랄 경보를 알리는 내 생존 시계가 머리에도 마음에도 담아두지마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중간에 가로막으며 대체 왜 이러냐며 막아주었지만 자식들보다 노쇠한 어머니는 주먹에 밀려 내 쪽으로 넘어져 올뿐이었다.


아, 엄마는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부모의 큰 행복 중 하나는 우애 좋은 자녀들을 보는 것일 테지만 캥거루 주머니는 진작에 찢어먹고도 남았을 연륜과 덩치를 자랑하는 못난 두 마리 자식새끼들은 자그마치 서른다섯, 서른셋을 처먹고 엄마 집에 얹혀 이런 못볼꼴을 보이고 만다.


뇌에 관련된 질환이 없는 이상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동생이 분노가 끓어오르는 지점은 도무지 모르겠으며 알고 싶지도 않다.


상황의 다른 면을 만들기 위해서, 적어도 노력해봤다는 말을 하려면 알고 싶다고 함이 맞겠으나 광견병에 걸린 듯 미쳐 날뛰고 있는 중일 때는 찍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 그나마 광기의 시간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맞받아 칠 수가 없다.


똑같이 무력 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곤 제풀에 지친 개가 기어 들어가 노곤히 잠을 자고 나오면 나는 서열 싸움에 밀린 늙은 개처럼 슬슬 눈치를 보고 피하며 속으로는 저런 개쓰레기 새끼와는 다신 상종하지 않겠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정신 승리하는 것이다.


중, 고등학생 시절 내 팔뚝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성인이 돼서는 그땐 자기가 미안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술김에 사과를 했지만 오늘까지 합하면 다섯 번은 더 목줄을 끊고 으르렁 거리며 달려들었다.


엄마와 난 몇 번을 실망하고 분노 폭발 주기가 오래 잠잠했던 요즘의 기간을 세면서 ' 이제는 달라진 게 아닐까 ' 하는 기대감에 들떴었는데 무참히 짓밟혔다.


동생은 타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집으로 겨우 돌아와 몸이 회복되면서 깨달음을 얻은 척, 점잖은 모습을 보였었는데 실은 독을 품은 내면 그대로였던 것이다.


사람이란 참 한끝도 달라질 수 없는 동물이라고 통탄하는 밤에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이 글을 쓴다.


엄마도 이 상황이 내 책임책임인듯 원망하는 것 같다.


방구석에서 놀란 맘을 진정시키며 웅크리고 있을 때  저리 비키라며 짜증을 내는걸 보면 !


' 어머니 미친개한테 혼쭐을 내주지 못할 거라면 물린 똥개는 걷어차면 안되죠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삼킨다.


엄마 입장에선 이놈의 개새끼들 다 쫓아내고 싶을 것이고 그때 마침 화풀이라도 할만한 똥개가 발에 걸린 것뿐이니까.


차라리 내 동생은 정말 어딘가 아프기 때문에 내가 참아줘야 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내 비참함을 달랠 방편으로 여겨질 때가 있어, 가끔은 진실인 것처럼 믿어버릴 때가 있다.

부득이하게 동생과의 관계를 설명해야 할 순간이 오면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말해버린다.


나는 올바르게 화를 내는 방법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겐 화가 쌓이면 풀지 않고 끊고 도망가버리고 엄마에겐 동생처럼 생지랄을 부리지 않으면 내가 화났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닐까 싶어 짜증이 자꾸 쌓인다.


화풀이할 수 있는 곳이라곤 모자란 손톱과 욕실 슬리퍼 한 짝을 패대 기치며 이 씨... 낮게 외치다 만다.



이유없이 맞고, 눈물을 흘릴 동안 부당하게 받은 폭력을 되돌려 줄만한 가정의 위인도, 구원자도없다.


그렇게 얼떨결에 결국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들로 떠넘겨져 삶의 욕구들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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