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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un 15. 2020

운전은 가끔 못할수도 있다.

퇴근하고, 살기위해 집까지 걸어온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서너번쯤.

이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하루에 백보도 걷지 않을지 모른다.

자리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있어야 열심히 일을 했다고 볼 수 있고, 또 보여지기에 최대한 자리를 지키는 편이지만

기역자로 구부러진 무릎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버스를 타고 집에와도 교통체증 때문에 몇십분을 더하면 걸어온 시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잘한 이유들이 그러니까 걸어서 집에가는것이 낫다는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거리는 기와를 얹은 가게 지붕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행궁길이지만 짧고 아쉽다.

걸어오는 길을 10으로 봤을때 1정도 될까 싶은 짧은거리다.

그 짧은 거리를 지나오는 오늘, 아찔하면서도 안타까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여느, 뜬다하는 핫플레이스 거리가 으레 그렇듯이, 잠깐의 주차할 공간도 여의치가 않은바, 행리단길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돌아볼 생각이라면 주변 주차 공간을 어떻게서든 찾아야겠지만, 몇분 정도 가게에 다녀올 정도라면 임시적으로 주차를 하기도 한다.

차가 지나는길,사람이 지나는길 구분히 모호한 편이라 무릎보다 낮고, 작은 가드레일이 중간 중간 설치되어 있다.

(당최,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보도블럭에서 솟아나온 얄궂은 뿌리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보행자를 지켜주는 장치가 된다.

이 사이에 솜씨 좋게 차를 우겨넣듯 주차를 한 차를 보면서, 오 재주도 좋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걸음 지나지 않아, 바닥이 쩍하고 갈라지는듯한 큰 소리가 나서 돌아봤는데, 솜씨좋은 주차를 자랑했던 그 차가, 차를 빼면서 위에 설명한 이름모를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것이었다.


주차를 할땐 장애물을 피해 잘 정차했으면서, 차를 뺄땐 싸그리 잊고 있었는지, 앞범퍼가 패인 깊이와 각도는 망설임을 몰랐다.

운전자와 동승자가 바로 차에서 내렸고 황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잘못인지 과실사를 따져보는 경우와, 본인의 운전 실수로 발생된 차의 손실을 속앓이 하는 것중 어떤것이 스트레스가 더 클까?


갑자기 농담반, 진담반으로 모든것을 내탓으로 돌리는 엄마가 스트레스 저울질의 중간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만약 나의 운전 미숙으로 접촉사고가 났다면, 백에 제곱을 더해 모든 책임과 비난을 받고, 한번도 운전을 원숙하게 한적이 없었던것 처럼 몰아갈 것이다.

반대로 엄마가 운전자인 경우에도 결정적인 꼬투리를 찾아내 내 탓을 할 것이다. 분명히.

엄마의 실수가 확실한 상황에서도 물끄러미 눈치를 보며 " 이번에는 내가 무얼무얼 했기 때문에 그런거지?" 라며 반사적으로 비굴한 말을 쏟아내버린다.


길에서 목격한 접촉사고 장면에서 나를 운전 미숙아로 보는 엄마의 시선과 상황이 바로 떠오를 만큼, 엄마와의 드라이브는 즐겁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길게 늘여놓았을땐 채 몇분이 되지 않을것이다.

그저 잠깐의 서운함일 것이다.


저변의 숨겨진 진심은 내 탓을 하지 말아달라기 보단, 내가 차를 쓰고 싶을때 군말없이 빌려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더 크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의 탓을 해야 숨통이 트이는 사람도 있다.

엄마가 내탓을 하고, 운전 설교를 늘어놓더라도, 내가 빌려달라고 할때에 차를 좀 빌려준다면 좋겠다라고 마무리짓고 싶었는데

작은 접촉사고라도 날지 모를경우의 수를 떠올리게 되고, 운전실력으로는 영원히 엄마의 신임을 얻지 못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거 보면, 습관성 비굴함이 결국 발목을 잡는다.


엄마는 엄마가 지켜보는 눈앞에서만 내가 운전하길 바란다. 아마도, 고분고분하게 그렇게 따라갈 것이다.


오늘 행궁길의 운전자는 그 자신도, 옆사람도 덜 탓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가드레일 탓을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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