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평온한 대지 위 온화하게 비치는 볕을 받고 서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크로머에게 한 사소한 거짓말이 책잡히게 되면서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유도하는 나쁜짓들을 저지르게 된다.
사랑으로 감싸주는 부모님의 보삼필음 받고, 바른일을 행하도록 교육하는 학교의 가르침 속에 자랐던 싱클레어에게 크로머의 존재는 혼란과 공포, 거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한편 어떤 아이들은 그들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튼튼하지 못했던 탓에 너무 이른 시기의 순수한 아이의 성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알속에서 몸을 데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와장창 알껍질은 깨져버리고, 세번째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온갖 종류의 ‘ 그러면 안되는 것들, 나쁜 것들, 타락한 사람들 ‘ 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전을 보면서 나의 첫 순결, 순정, 밝음, 규율을 지키려는 의지 등이 무너진 후 공허함이 어둠으로 자란 속살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싱클레어가 떠올랐고, 빨리 조숙해져버린 아이들이 생갔났고, 그들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퀘이 형제가 만든 도미토리움에 갇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과 촛불 하나가 내면의 문을 여는 시작 의식이라면, 이 전시전이 구현해놓은 조명과 암실같은 분위기는 더 깊숙히 숨겨 있던 어둠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따라 내려가게 해준다.
스티븐 퀘이, 티모시 퀘이 쌍둥이 형제는 영국에서 영화,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애니메이션 외에도 일러스트레이션, 무대세트 디자인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작품활동을 하는 중이다.
그들의 작품은 산업사회 이면의 부조리와 불안, 초현실주의와 에로티시즘과 같은 철학적 주제를다룬다고 하는데 명확하게 의도가 드러난다기 보다는 암묵적 분위기를 연출하여, 관람객에게 각자의 사유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퍼핏(인형극에 쓰이는 꼭두각시)과 스톱모션(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1프레임마다 조금씩 이동하여, 카메라로 촬영하여 마치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영화 촬영 기술)기법으로 그들이 오브제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활용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도미토리움 안에 그보다 더 작은 퍼핏이 영원히 살아 있을것만 같다.
영화,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숨이 닿으면 퍼핏은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부드럽지 않다.
짧게 짧게 끊어지는 분절된 동작은 누군가의 추악과 고통과,음울의 시간을 훔쳐 이어붙인 것 같았다.
전시장에는 총6개의 영상작품을 보여주고 있고, 각 영상에 나오는 도미토리움이 바로 가까이 전시되어 있어 시선을 바꾸어 가며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사람이 잠들면 몰래 움직이는 인형들이 있다면 퀘이형제의 작품들도 영상이 꺼지고 관람객이 모두 나간 어둠이 오면 도미토리움 안의 모든것들이 살아 숨쉴 수 있을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정교하고 세밀하며 계산된 음산함이 살아있는 디오라마였다.
퀘이형제는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기계화된 인간의 삶을 돌보며 해부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퍼핏의 특징은 반절이 날아간 머리 통에 양쪽 눈알은 모두 빠져, 보고 인지하는 기능은 모두 불구와도 같았지만 손가락은 세심하게 살아있어 기능,기술적인 특징만을 강요받는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퀘이형제의 영상작품들은 대부분 대사가 없다.
어떤 작품은 관람하는 자세를 불편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나 의도를 이해하는것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창작자의 의도와 관람객의 느낌이 상통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퀘이형제의 세계를 즐기면 된다.
관람객의 혼란까지 예상해두었다는 듯, 관람공간 자체가 하나의 도미토리움으로 보여지는 공간설치가 인상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 박지윤의 성인식 뮤직비디오, 근래 사이코지만 괜찮아 드라마에서 작가 고문영의 책으로 나오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고문영의 유년시절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이 퀘이형제 작품의 기조와 닮아있다.
연약하고 서정적인 가치들이 무너지고 쉰내와 눈물의 짠맛으로 뒤범벅이 된 이런 잔혹 동화가 현실과 더 가까운 극사실주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다웠던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