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처음이라, 차박은 더 처음이라
바야흐로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휴가철이 되면 나 어디에 있노라, 보았노라, 다녀왔노라를 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저귐들이 고향을 떠나버린 새들의 빈둥지처럼 공허한 적막이 감돈다.
나는 ~을 하고 싶다. ~ 할 것이다. 등등의 나를 강조하고 표현하는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다.
그럼에도 해야될 것과 억누르지 못한 본능은 기약없는 기다림으론 묻혀지지 않았다.
나와 엄마에겐 그것이 함께 하는 휴가였다.
빨간날을 쉬는 나와, 교대근무제로 돌아가는 엄마가 함께 쉬는 요일이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렇기 때문에 뭐라도 하면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강박 또한 가지고 있었다.
가족이란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시간으로 보낼 때가 많아 함께하는 시간은 몇마디의 대화, 같이 TV보기, 밥먹기 등등의 '함께 어떤 일을 했다거나 사건이 있었다고 말하기엔 소소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엄마는 이런 작은 일상을 아무것도 안한날로 공을 친다고 말한다.
엄마의 열흘 휴가 중 2박 3일이 나의 휴가일과 맞아 떨어졌고, 대부분을 공친날로 인내하다 2박3일은 함께 1에서 2를 더한 일정을 보내고 싶어하셨다.
원래 계획한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희안하게 제주도는 엄마 따로, 나 따로 각자 다닌 적이 대부분이었고 함께 다녀본 적은 없어 언젠가 같이 갈 여행지의 일순위는 늘 제주도였다.
비행기와 렌터카를 같이 예약했고 숙소는 절물 휴양림으로 정했었다.
그러다 코로나 경계 강화가 심화되면서 전국 모든 국,공립 휴양시설 예약이 취소 되었다.
잠잘 곳이 사라졌으니 찾아갈 수단도 의미가 없어졌다.
숙소를 다시 구하면 되지 않겠냐고 어떻게든 제주행을 살려보려 했는데 부러 무리해서 제주에 가는건 아닌것 같다고 하면서, 둘이 함께 하되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차박캠핑을 떠나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을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블로그, 카페 후기등을 찾아보셨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서른어느번째쯤엔 7번국도를 따라 찬찬히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제목도, 출연했던 배우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영화지만 대략의 줄거리는 엄마와 같이 본 기억이 남는 영화가 있었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딸을 데리고 무작정 나와 자동차로 길을 달리고 달리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모녀는 서로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물어 서로를 물어 뜯을 듯 으르렁 거리다가 부등켜 안았다.
영화를 볼때, 어떤 상황을 부러워하는 지점이 다를 때가 많았는데 그 영화에선, 발길 닿는데로 목적지 없이 자동차로 시작해, 자동차로 끝나는 여행을 해보자고 의견이 일치 됬었다.
차박 준비물을 챙기고, 몇가지 용품들은 사야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동안 엄마와 내가 왜 캠핑에 다니지 않은건지 의아할 정도로 충만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서로 발견하지 못한 취향의 공통점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가 취향의 범위를 좁혀준 탓도 있을 것이다.
시련은 한가지여도 충분히 험난한데 업친데 덥친격으로 태풍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태풍과 최대한 멀리하며 시작할 7번국도의 시작지가 지도 아래쪽인지 위쪽인지를 고심했다.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동해안을 끼고 경북으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빗방울을 가득 담은 먹구름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치열하게 쫒아왔다.
얕은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작게 때리고 있는것을 보면 아, 이정도는 어디든 다닐만 하겠다 안도할쯤엔, 헐레벌떡 뛰어온 비바람이 이래도 다녀볼래 ? 라며 세찬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낙산사에 다다라 주차를 하면서 기왕에 집을 나섰다면, 열심히 떠돌아보자고, 비오는 날의 낙산사를 맞이해보자고 입을 맞췄다.
우리둘 모녀는 대체로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선, 비관적인 생각에 휩싸일 때가 많은데 여행이란 주제에 묶인 일상을 맞이하는 자세는 한결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바뀐다.
그것이 가끔, 얼마나 웃기냐면 별 시덥지 않은 우연에도 행운을 얻었고 선물을 받았다며 자조적인 감상을 서로 부추기면서 깔깔 대는 것이다.
어쨌든 비는 오지만 걸은 만한 비라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우산을 두개 챙겨오는것은 잊었지만 트렁크에 손목이 후들거릴 정도로 무거운 장우산이 있다는것은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같은 행복회로 분석이 길을 걷는 주제가 된다.
낙산사는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전쟁과 화재로 고초를 많이 겪으며 복원과 소실을 반복한 파란만장한 절이었다.
내가 가보지 않은 많은 여행지들은 이미 엄마가 다녀온 곳들이 많았고, 더러는 5-6번은 이미 방문했던 곳일 때도 있었다.
이 곳 낙산사도 엄마는 네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와봤던 곳에 다시 가는것보다 안가본 곳을 가는게 더 흥미롭지 않을까 라고 물으면 엄마는 나와 같이 가는 곳들은 방문 횟수와는 상관없이 새로움을 얻고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뒷받침 해주듯 깊고 진한 감탄사를 쏟아낸다.
연잎이 빼곡히 담긴 연못 너머 보타전의 기와를 보면서, 엄마를 내 삶에 이고 있는 형체가 겹쳐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와의 독립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나의 일상을 고하는 팔할의 지분이 엄마가 함께 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스스로를 한번도 마마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삶을 잘 영위하며 살고 있고 존중하고 있다.
다만,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분산될 가족이라는 이름의 소속감과 애착이 우리 모녀에겐 둘로 압축될때가 많았고 이런 특수한 절대성이 여느 가족의 형태와 반드시 닮아가는 방향으로 바뀔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념품을 파는 다래헌 앞에는 고양이들의 쉼터가 있었다.
노곤하게 뻗어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의 평화가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아기와 같이 순수하고 무해한 작은 생명체들을 보면 손을 뻗어 그 털끝 하나를 만지고 싶은 충동이 곧 잘 드나, 뻗었던 손에 다른 손을 얹어 눈으로 쓰다듬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의상대에 올라 건너편 홍련암을, 그리고 낙산사를 에워싸고 있는 끝모를 동해바다를 보았다.
암초에 부딪혀 물보라의 파편이 되는 파도가 후련하면서도 애잔해보였다.
간혹 이해할 수 없는 분노와 이기심을 드러내는 사람의 심연에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고요하고 깊은 바다 밑 세상이 있을 거라고, 파도는 그들의 작은 일부분일거라고 생각하며 휴대폰을 울리는 알림들을 지웠다.
해수 관음사를 한참 올려다보는 아이의 뒷모습이 함께 나올 수 있도록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히는것은 아직도 싫어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에 타인이 섞여 있는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내가 배경에 속할 수 없다면 잘 어울리는 타인을 함께 담아두고 싶어진다.
낙산사를 떠나, 바다에 가까이 닿아 있는 휴휴암으로 장소를 옮겼다.
역시 이곳도 엄마는 몇차례 방문한 곳이었고, 절이 자리한 위치와 발가락 모양의 독특한 바위, 움푹 움푹 패인 암반을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다시 오고 싶었다고 했다.
쉬고 또 쉰다는 뜻을 가진 휴휴암에서 엄마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요 며칠의 휴가로 일을 쉬니 버석한 엄마의 손바닥이 조금은 보드라워졌고, 그동안 투박하고 가끌한 손바닥의 촉감은 그저 노화의 무상함이 아니어서 한참이나 미안해졌다.
지혜관세음보살이 있는곳 석조상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것 처럼 생생해보였다.
특히 석상에선 잘 볼 수 없던 입술의 혈색이 시선을 끌었다.
날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고, 비바람이 거세져 첫날 차박지의 장소를 고르는게 까다로웠다.
엄마도 나도, 캠핑은 이십년만이고, 자동차 숙박은 처음이라 우왕좌왕 머리속도 말도 혼란스러웠다.
정동진쪽으로 넘어와 바다부채길을 걸어보려 했지만 폐쇄된 상태였다.
썬크루즈 호텔이 있는 지대가 높아 그쪽에 주차를 시키고 머물러야 안전하지 않을까 했지만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 예의주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썬크루즈에 주차된 차주들은 호텔에 머물러 있겠지만 그들의 차를 마주보며 차안에서 밥을 먹고, 잠을 청해야 할 때 호기롭게 도전한 차박 결심이 풀이 죽을것 같았다.
그래서 썬크루즈와 조금 떨어진 어느 정자 옆 주차장쪽에 주차하고, 치즈를 얹은 컵라면을 먹고 긴 밤의 여가는 드라마 세편을 몰아 보았다.
소나기가 내리는 차안에서 잠을 청해본 일이 있었던가 ?
없었다. 차 천장과 창문을 쉴새 없이 때려대는 빗줄기는 전쟁통 따발총 소리와 비슷할 것 같았다.
드센 바람에 차가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후덥지근하고 습했지만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에어컨을 한번씩 껐다 켰다, 빗소리에 깼다 다시 잠들었다 선잠을 이어갔다.
무섭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엄마도 분명 생각했을 것이다.
몸을 꼬깃 꼬깃 접어가며 차안 잠자리를 마련하고. 공중화장실에서 같이 양치를 하고, 조금 호된 첫 차박 신고식이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라서 좋다라고 서로 말해준다.
실상은 운수나쁜날의 노숙경험이겠지만.
곤궁해지는 상황일 수록 말의 힘은 크다.
엄마가 ' 이런 새로운 체험이 ! ' 라고 말해주니, 나도 이 밤이 지나면 온실속 화초에서 들풀 정도로는 바뀌어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