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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ug 27. 2020

엄마가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넷플릭스와 왓챠를 소개해 주었다.


50대 후반으로 접어든 엄마의 드라마 시청 영역은 아침,저녁,주말 연속극의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을 맴돌고 있었다.


뮤지컬과 연극 보는 것을 즐겨하고 가끔 전시전도 보러가는 폭넓은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분이지만 어쩐지 드라마만큼은 서로를 속이고,음모를 꾸리다 분노로 울부짖는 막장 라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한차례 같이 미국드라마를 보자고 권유했을적엔

외화는 글자를 읽기 힘들다며 거절했었는데 일정 거리 이상 먼곳의 글자는 나보다 잘 읽는것으로 보아 글자가 안보이는 문제는 아니었다.


다차원의 전개, 평면적이지 않은 인물들의 대사를 따라 적혀가는 자막이 어렵게 느껴지셨던 것 같다.


2주전 주말, 왓챠에 있는 와이우먼킬 미드를 같이 시청하자고 다시 권했다.

1화 중반까지는 흥미를 붙이지 못하시는것 같다가 3화,4화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다음화를 넘기는 리모컨을 또깍또깍 누르고 있었다.


그 다음주는 빅 리틀 라이즈 시즌1,2를 같이 몰아보았다.

촘촘하게 엮어진 줄거리,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대사와 영상 연출을 나란히 앉아 보는건 나에게도 잔잔한 즐거움이 되었다.


여성 서사가 주요 흐름이 되는 두개의 외화 드라마를 함께 보고 나서 엄마는 겉으로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는 가정과 삶도 절대적인 자기 슬픔이 있다고 말했다.


열흘 휴가를 받았지만 꼼짝 없이 집에 들어앉아야 하는 요즈음은 엄마에게 참 비극이다.


그만큼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을 즐기는 분이셨다.


동생에게 어떤 드라마가 볼만한지 물어,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고

체르노빌을 보고

디어마이 프렌즈를 골라 보신다.


누구보다 사람만나기를 좋아하 그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지만 TV 화면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엄마 모습이 참 낯설면서도 귀엽다.


오도카니 앉아 더듬더듬 리모컨을 눌러대고, 오늘은 어떤걸 보았는데 어떻더라 하며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하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 작은 안쓰러움과, 어쨌든 익숙했던 시청프로에서 벗어나 도전을 한다는 대견함과 그로 인해 나와 동생과 대화거리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반가움의 감정이 뒤섞여 차오른다.


가장 가깝지만 종종 남보다 더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는 엄마였다.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다양하게 화젯거리를 늘려가는 대화가 고팠었다.


엄마와 오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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